• [신년칼럼] 여의도 재건축을 許하라
  • 입력날짜 2020-01-14 14: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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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찬(자유한국당 ‘전 영등포을 당협위원장)
박용찬(자유한국당 ‘전 영등포을 당협위원장)
누수와 녹물에다 위험한 엘리베이터

지난해 12월 여의도의 공작아파트에 비상이 걸렸다. 지하 1층 천정에서 물이 마치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져 내리고 거주 공간 내벽에서도 물이 줄줄 흘러들어 한겨울에 물난리를 겪은 것이다. 어디에서 누수 현상이 발생한 것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 복구반이 긴급 투입돼 간신히 누수 지점을 발견했으나 복구하는 데에만 일주일이 걸렸다. 누수 부위가 한두 곳이 아닌 데다 배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복구에 애를 먹은 것이다. 이제 누수 현상은 일상화된 상태. 한 달 평균 서너 집에서 크고 작은 누수 현상이 발생한다. 오•폐수 배관, 난방 배관, 온수 배관할 것 없이 모든 배관이 오래되고 낡아 있어 여기저기서 물이 새는 것이다.

녹물은 그야말로 기본이다. 몇 년 전부터 수돗물에 벌건 녹물이 끼기 시작하더니 녹물의 농도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모처럼 공작아파트의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손주와 손녀들은 피부발진과 피부병에 걸려 부리나케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떠나거나 아예 생수를 사다가 데워서 아이들을 씻기고 있을 정도이다. 1976년에 지어진 공작아파트. 무려 4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

1971년에 세워진 시범아파트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오래되고 낡은 엘리베이터는 운행 중 갑자기 정지하거나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빈발한다. 연로한 어르신조차 엘리베이터 타기가 겁난다며 7, 8층을 직접 걸어서 오르내리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이다.

골병들어가는 수도 서울의 맨해튼

더욱 심각한 곳은 아파트 지하 변전실. 변압용 시설과 부품들이 낡을 대로 낡아 한눈에 보더라도 극히 위험천만한 상태. 서울시의 안전조사 결과 ‘화재위험이 있어 현재 상태는 매우 위험한 상태... 노후화 부분 전면 교체 요망’이라는 다급한 진단이 내려졌다. 게다가 변전시설 바로 옆에 50년 된 온수 탱크가 있어 누수 현상이 발생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마저 안고 있다. 주민들은 불안하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천정과 외벽에서 콘크리트가 뚝뚝 나뭇잎처럼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 시범아파트의 한 해 평균 유지보수 건수는 무려 6,000여 건. 유지보수 비용만도 한 해 평균 12억 원이 소요된다. 50년의 세월 속에
시범아파트는 그야말로 골병이 들어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 증상을 더해가고 있다.

노후 아파트 순위 20위 중 여의도가 무려 10곳

여의도의 다른 아파트도 사정은 마찬가지. 만성적인 주차공간 부족은 결국 안타까운 인명사고까지 초래했다. 지난 2018년 한 아파트에서 빼곡하게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119구급차가 진입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한 할머니가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수도 서울의 맨해튼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던 여의도가 지금은 골병이 들 대로 들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서울지역에 있는 3,800여 개 아파트 단지 가운데 노후도 순위 20위를 꼽아봤더니 여의도의 아파트가 무려 10곳이나 차지했다. 번영과 성장의 상징 여의도가 이제는 낡은 도심으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극히 위험한 도심으로까지 추락한 것이다.

유독 여의도에서만 힘겨운 재건축 추진

영등포구 조사에 따르면 영등포 관내에서 13개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데 유독 여의도에서만 재건축의 길이 막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재건축을 위한 조합설립 인가가 끝났거나 공사에 들어간 상태. 이 때문에 여의도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수정아파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정아파트에서 재건축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일찌감치 안전진단도 통과했으나 여전히 정비구역 지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려 18년 동안 재건축을 하지 못한 채 답답하게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다. 현재 여의도에는 10여 곳 단지가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제자리를 맴도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집값 잡으려다 사람 잡겠다’

이처럼 여의도 재건축 추진이 막힌 결정적인 걸림돌은 서울시의 불허 방침. 지난 2017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의도 통개발을 전격 선언해 재건축의 활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문재인 정부의 반대 방침에 부딪혀 여의도 통개발 계획을 맥없이 접고 말았다. 통개발이 추진될 경우 집값 상승을 초래한다는 게 재건축을 가로막은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명분은 허상임이 금방 드러났다. 통개발 중단 발표 이후 여의도의 집값은 오히려 무서운 속도로 치솟았다. 14억 하던 38평 아파트는 지금 20억대로 껑충 뛰었다. 공급은 하지 않고 수요만 억누르고 있으니 집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결과. 결국, 집값도 잡지 못하고 주민들의 불편과 불안만 초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집값 잡으려다 사람 잡겠다’는 불안감과 비판이 주민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여의도 재건축은 생존권의 문제’

‘설마 하다 대형사고’ ‘불안해서 못 살겠다’ ‘언제까지 기다리나’ 시범아파트 외벽에는 이처럼 절박한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여의도 아파트마다 재건축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있고 서명운동에다 1인 시위까지 벌이며 재건축을 성사시키려 하지만 서울시는 요지부동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은 채 기다려보라는 대답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의도 재건축이 추진된 지도 벌써 20년째. 주민들은 답답하고 야속할 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하고도 정당한 요구에 정부도 서울시도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묻고 있다. 수도 서울의 맨해튼 여의도를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제2의 삼풍백화점과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어쩌려고 하는가? 사고가 나서야 그때서야 다급하게 움직일 것인가? 여의도 재건축 문제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여의도 재건축 문제는 부동산 정책의 차원을 넘어 ‘생존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용찬(자유한국당 ‘전 영등포을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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