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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구상한강백일장 10월 10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개최
시인 구상은 1971년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로 이사와 작고한 2004년도까지 여의도에서 거주했다.
구상 시인은 33년을 영등포구에 거주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영등포구는 구상시인이 시의 소재로 즐겨 삼은 강(江)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2010년부터 (사)구상선생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구상한강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제6회를 맞는 구상한강백일장은 오는 10월 10일(토) 여의도 한강공원 구상 선생 시비 주변에 펼쳐진다. 세계 200대 문인에 선정된 시인 구상 구상 시인은 문화적인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시인이다. 구상(1919년~2004년)은 1946년 원산 문학가동맹에서 펴낸 시집 ‘응향’ 필화사건에 휘말려 월남한 후 연작시 ‘강’, ‘모과옹두리에도 사연이’, ‘시집 구상’, ‘초토(焦土)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 ‘타버린 땅’, ‘유치찬란’, ‘밭과 강’,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등 10여 권이 넘는 시집과 수상집, 수필집 등을 펴냈으며 팔순에 다다른 시기에도 시집 ‘인류의 맹점(盲點)’을 발표해 문학에 대한 열정과 정갈한 노시인의 깊이를 보여줬다. 그의 작품은 일찍부터 불어와 영어, 독어,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돼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각국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상의 문학세계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걸레처럼 더럽고 추례한 내 마음을 그 물에 헹구고 씻고 빨아 보지만 절고 찌들은 때들은 빠지지 않는다. ‘근황’ 중에서-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성찰의 시다. 구상시인은 이렇게 평생을 기독교적 존재관으로 살며 그것을 투명한 시적 예지로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건국신화와 선불교적 명상, 노장사상까지 포용하는 사상적 기반을 바탕에 두고 시를 써왔다. 맑고 투명한, 거기에다 사상적 통합을 시로써 이루어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을 노래하는 구도자 구상 시인은 또 하나 남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너무나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때문인지 문학은 항상 인생의 부차적인 것이요, 주된 것은 종교, 즉 구도요, 그 생활이었다. 그래서 구상 시인은 일본에 가서 대학에 입학할 때도 명치대학 문예과와 일본대학 종교과에 모두 합격하였는데 결국 종교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심을 가다듬기 위하여 복음의 묵상서《나자렛예수》와 신심시선《말씀의 실상》을 펴냈다. 문학가의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구상 시인은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은 어머니로부터 길러진 것 같다고 한다.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 한문의 기초과정과 고시조, 신소설, 한글 토가 달린 삼국지연의, 수호지, 옥루몽 등 중국 소설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어머니는 멋도 모르는 구상 시인에게 자신이 소설의 줄거리나 그 재미있는 대목을 곧잘 들려 주었고, 또 시조도 이것저것 따로 외게 했다. 이러한 조기 교육으로 구상 시인은 보통학교에 들어가서 조선어(즉 국어) 과목이나 글짓기, 이야기 시간은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염소의 뱃속에는 기계장치가 있어 그 똥이 검정콩알처럼 둥글둥글하게 되어 나온다!’ 등 어린이들이 다 함께 갖는 공상을 너무나 수월하게 현실화하여 천진하게 써내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강(江), 나의 회심의 일터 구상 시인은 산보다 강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시인이 자란 원산시 외곽에 있던 덕원이라는 마을 앞에는 마식령 산맥으로부터 흘러와 송도원 바다로 흘러가는 적전강이 있었는데 구상 시인은 이 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해방감을 맛보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상 시인이 장성해 가면서 일반적인 경치나 풍경으로써의 강보다 인식의 대상으로써 강을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스도 폴이라는 가톨릭 성인의 설화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접한 게 영향을 주었다. 거기 주인공들은 강을 회심의 수도장으로 삼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강에 대한 상념이 시인에게 강을 연작시의 소재로 삼게 했다. 여기에는 물론 시인이 여의도에 살아 날마다 한강을 마주하고 있고, 시골집도 왜관이라 낙동강을 자주 접하는 데서 오는 친근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인은<강> 60편을 완성하면서 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았다. 구상 시인과 영등포 영등포의 대표 문화 인물 구상 시인은 대구 왜관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60년대 말부터 서울 신당동에 거주하다가 1971년 여의도에 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사해서 2004년 작고할 때까지 33년 동안 살았다. 구상 시인은 여의도에서 살면서 여의도 윤중제(輪中堤)를 사색의 산책길로 삼아 칸트처럼 규칙적으로 거닐었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했던 사회운동가 성천 류달영(전 서울대 교수, 1911~2004) 선생과 1991년 사회교육기관인 <성천문화재단>(영등포구 여의도동 라이프빌딩 내 소재)을 설립하여 우리 국민의 정신생활과 생활문화 창달을 위한 고전, 현대, 미래학 교육을 실행하였다. 두 분이 작고한 후에도 <성천문화재단>은 지금까지 활발하게 사회교양 교육을 실행하고 있다. 문화적 풍토가 취약한 영등포에 구상 시인 같은 위대한 시인이 30년 넘게 거주했다는 것은 영등포 주민의 문화적 자긍심이 될 것이다. 구상 시인은 여의도 한강 변에 거주하면서 한강을 소재로 <그리스도 폴의 강> 연작시편 등 수많은 시를 남겼다. <성천문화재단>은 구상의 이런 시업(詩業)을 기리기 위해 한양 정도(定都) 600주년 기념으로 여의도 한강공원에 구상 시비를 건립하였다. 사단법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 구상 시인 사후(死後) 2006년, 사단법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가 발족하였고, 2008년 영등포구와 손을 잡고 구상 시인 기념사업을 펼치기로 하였다. 대표적인 기념사업으로 구상문학상 운영, 구상한강백일장 등을 펼치고 있다.
강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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