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독교' 동남아 선교할 자격 있나?
  • 입력날짜 2013-01-08 05: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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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 눈으로본 서구열강](20) 서구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기독교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후진국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나라 사람들이 바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동남아시아를 마구 점령한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일본군의 군복을 입은 한국인들이 UN군 포로들에게 가혹한 행동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에게도 한국인들이 점령군으로 둔갑하여 무지한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일본군의 부하인 조선 사람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참혹한 행동을 많이 행한 것에 대해 현지인들은 오늘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범아시아대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들은 모두 다 말을 하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전쟁터에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뒤를 따라 “넘버 투”가 되려는 욕망으로 어리석은 가혹한 만행을 동남아시아에서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있어서는 미국의 지배체제하에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미국인들의 뒤를 따라 “넘버 투”가 되려는 욕망으로 기독교 선교를 극성스럽게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동남아시아에 대한 선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심정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기독교 선교에 미국인 보다 더 극성스럽게 열을 올리고 있다.

동남아시아 성매매-인신매매 사태를 고발한 영화 <트레이드 오브 이노센트(Trade of Innocent)>가 2012년 12월 서울에서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를 개최했다. 볼트하우스 박사가 사재를 투자하여 제작한 이 영화는 동남아시아에서 성행하고 있는 소아 인신매매와 폭력 등 충격적인 현장을 소재로 하여 제작한 영화인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하여 한국 기독교는 모르는 척 하고 있다.
▲영화 '트레이드 오브 이노센트' 한 장면      © 편집부
▲영화 '트레이드 오브 이노센트' 한 장면 © 편집부
 


조선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표현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 덕분에 한 때 호의적 감정을 가진 바 있는 동남아시아인들이지만 오늘에 있어서 동남아시아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서구 식민통치자들 편에 옮겨간 셈이 된 한국인들의 처신에 대하여 매우 냉소적이다.

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타고르의 정신으로 동지의식이나 연대감은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고 오직 반공주의만 남아 있으며 식민지든 군사독재든 뭐든지 친미사대주의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이제는 은폐된 희미한 기억속에서 “가해자”가 되고 있을 뿐이며 절대로 떳떳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11개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륙에 속한 나라들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 5개국이다. 도서에 속한 나라들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 등 6개국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국가연합체인 <아세안(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을 구성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면적은 약 4,000,000㎢이고 인구는 약 6억만명으로 세계인구의 12분에 1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주요 종교는 불교와 유교가 중국인들 가운데 우세하고 그 다음은 이슬람교이고 필리핀은 카톨릭이 우세하다.

# 동남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침략

동남아시아는 19세기말까지 400년 동안 유럽의 식민지가 되고 있었다. 불교화된 대륙에 속한 나라들과 이슬람화된 도서지역에 속한 나라들을 막론하고 월등한 화력을 가진 서구인들의 침략에 대하여 동남아시아인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인들의 동남아시아 침략의 시작은 1511년에 포르투갈인들의 말라카 침략과 함께 시작됐으며, 17세기에는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프랑스 등 열강들이 무역전쟁을 일으키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동남아시아를 침략했다.

서구열강들의 동남아시아 침략의 특성을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4면으로 구분한다.

첫째, 서구열강들의 침략은 정치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을 영토적 침략 경계선을 확장하여 통치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사실에 있어서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적인 명칭이 생긴 이유는 서구열강들이 세계정복의 수단에 의하여 지역의 명칭을 마음대로 붙여서 생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적인 명칭을 사용한 것은 영국과 미국이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으로 <동남아시아 사령부>를 설치함으로써 지역적인 명칭으로 확정되기도 했다.
▲ King PhilipII of Spain
▲ King PhilipII of Spain
또 한 예를 들어 말하면 필리핀이라는 명칭의 발생은 스페인 군대가 16세기 후반에 오늘의 필리핀 여러 지역을 정복하고 그 당시 스페인 국왕의 “펠리페 2세(Felipe II)”의 이름을 따라 정복한 땅의 이름을 “필리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의 필리핀이라는 국가의 명칭은 본래 원주민 토착인들이 고대에 사용하든 명칭인 “바랑가이”는 사라져 없어지고 “필리핀”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작명한 국가의 명칭들이 새로 시작됐던 것이다. 이것은 필리핀에서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속한 모든 나라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서구 침략자들이 저들의 편리한 정치적인 유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둘째. 서구열강들의 침략은 경제적인 면에서 자원의 공급과 상픔수요지로써 서구열강들의 산업화를 활성시키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매우 중요한 통치수단이 되고 있었다. 서구의 침략자들은 동남아시아에서 해양산업과 광산업에 투자하여 최대의 경제적 착취를 획득하고 있었다.

서구열강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시장개척이라는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식민지통치에 편승하여 도로와 철도를 건설함으로써 주요 도시들이 건설됐다. 이로 인하여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공업과 농업이 지역적으로 연결되어 발전하도록 했다.

셋째, 서구열강들의 침략행위는 동남아시아 사회문화면에서 유럽의 영향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삶의 기능과 형태가 혼동되는 결과를 낳았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유입됨으로써 전통적인 삶의 형태가 파괴되고 도시의 슬럼화가 확장되고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통치수단에 의하여 중국인들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인도인들의 이동이 급증함으로 인하여 동남아시아의 인종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을 영국은 식민통치를 위한 유리한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서구 식민통치하에서 학교교육은 식민지배를 위한 서구문명화교육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서구문명교육의 수혜자들은 자연히 식민정부의 토착인 공무원들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서구화된 교육제도는 비서구화를 주장하는 토착국민 정서와 정면으로 대결하여 종족갈등의 뿌리가 되고 있었다.

이러한 종족갈등은 오늘날까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 중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늘 동남아시아에서 국민국가통합의 과제와 직결된 문제들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분열이 표출되고 있으며 반서구-반미의 문화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서구-반미의 문화적인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정치화의 길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동남아시아에 상존하고 있다.

넷째, 동남아시아의 종교는 세계 종교의 다양성이 모두 다 공유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토속민족의 다양성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의 토속종교도 역시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간직하고 있다. 상좌부불교, 대승불교와 유교, 이슬람 종교가 동남아시아 전역에 가득차 있다. 필리핀과 동티모르에 카톨릭이 다소 있을 뿐이다.

대승불교와 중국의 유교가 합쳐진 민중종교가 절대적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우세하며 인도계의 힌두교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뿌리 깊은 종교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가져온 기독교와 19세기에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들여온 기독교는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지배적 종교가 되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종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태국과 캄보디아와 미얀마에서는 인구의 90%가 불교인들이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0% 이상이 무슬림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우에 전체 인구의 50%가 무슬림이지만 말레이시아의 다수민족인 말레이아족은 100%가 무슬림교도들이다.

동남아시아에서 1970년대 이후에 이슬람 부흥운동이 중산층과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하여 유행했으며 불교계도 개혁주의 운동이 일어나 초기의 불교정신으로 회귀하는 불교실천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동남아시아의 종교부흥운동은 중동에서 불기 시작한 이슬람 부흥운동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동남아시아의 경제적 발전과 고등교육의 향상으로 인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깊은 관심의 변화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탈냉전과 정치적인 세계적 변화로 인한 영향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동남아시아에서 17-18세기 영국과 미국이 들여온 기독교가 지배적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라고 하는 지역적 단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1840년에 맬컴(Malcom)이라고 하는 미국인 기독교 목사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역적 관심과 정치적으로 침략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는 기독교적 이념으로 둔갑하여 침략의 가능성의 문을 넓게 열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43년에 이르러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하여 일본군을 저지한다는 구실로 동남아시아를 점령하고 통치하기 위한 통치수단으로 이 지역에 “동남아시아사령부”를 창설하여 식민주의시대를 실제적으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동남아시아”에 대한 지역적 블록화 식민지 전략은 미국의 지배전략의 현상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미국의 식민지전략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과거에는 없었던 동남아시아라고 하는 지역적 명칭의 용어, 새로운 단어를 미국인들이 종교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남아 지역을 전체적으로 선교지화하기 위하여 하나의 지역적으로 파악하려는 동기에 의하여 탄생시킨 기독교 선교지로서의 명칭이었으며 또한 이와 더불어 미국이 정치적으로 식민지 침략을 위한 지역적인 명칭을 설정함으로써 서로 혼합된 명칭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오늘의 “동남아시아”이다.

# 동남아시아에 대한 기독교 선교의 문제

동남아시아의 사회문화와 정치 그리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동남아시아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힌두교, 불교, 유교 등 3대 종교의 중심지로서 BC 6세기 이래로 깊은 고대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다원화의 문화적 역사는 동남아시아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생의 삶에 대한 “전인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함으로써 중요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세계인구의 증가에 있어서 동남아시아는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세계인구의 증가율이 매 2초마다 5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3명이 아시아에서 출생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3명 중에서 동남아시아가 2명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동남아시아의 가난과 굶주림의 문제와 인간평등과 해방문제에 대하여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중요시하고 있다.

셋째, 약 3-4백년전부터 서구인들이 동남아시아에 대한 침략을 시작했으며 이로 인하여 이른바 서구화가 촉진되어 도시화와 종교적 세속화와 사회적 변화를 촉진시켰다. 전통적인 동남아의 종교문화는 타락하고 경제적 부상으로 인하여 사회의 가치관의 변화가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또 조상 때부터 이어 받은 농촌을 떠나 도시화가 됨으로써 경제적 빈부격차의 악순환이 확산되고 있다.

넷째, 동남아시아는 기독교 인구가 극히 적은 지역이다. 카톨릭 선교 400년과 기독교 선교 300년 역사에 비하면 동남아시아의 기독교 인구는 너무나도 미미하다. 2000년경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동남아시아 기독교 인구는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에 겨우 10% 미만이며 필리핀에 카톨릭이 우세한 것 외에 동남아시아 전역에 있어서 기독교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이한 현상으로 21세기에 있어서 동남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선교 운동이 떠오르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제3세계 어느 곳에서나 기독교가 쇠퇴해지고 있으며 특히 유럽에서 전통적 기독교는 풍습으로만 남아 있을 뿐 “신 없는 사회”로 변화 되고 있는 것이 오늘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사회적 혼란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기독교 세계선교역사학자 허버트 케인(Hubert Kane) 박사는 서구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동남아시아에서 기독교선교에서 실패한 역사적 자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ㄱ. 서구 기독교 선교사들의 문화적 우월감이 기독교 선교의 실패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서구 과학문명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동남아 현지인들을 야만시하면서 서구문명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과오를 범했다.

ㄴ. 선교사들은 동남아시아의 전통적인 토속종교의 가치성을 무조건 거부했다. 선교사들은 동남아시아의 토속종교의 뿌리 깊은 민속문화를 무조건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오만한 선교방식을 주장하면서 백인의 종교를 강요했다.

ㄷ. 서구 선교사들은 동남아시아에 기독교만 들여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파들을 들여옴으로써 선교 초창기부터 동남아시아인들을 여러 교파로 분열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자행하고 있었다. 교회건물의 양식, 예배의 형식, 지도자들의 교육과 경제적 지원 등에 있어서 교파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분파를 일으킴으로써 선교 초기부터 분열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었다.

ㄹ. 서구 선교사들은 가부장적 위치에서 생활수준이 너무 높을 뿐만 아니라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 자세로 선교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구 기독교 선교사들은 서구의 정치적인 식민주의와 군사적 침략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독교 선교와 정치적 침략의 유대가 실패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허버트 케인 박사가 지적한 동남아시아 선교의 실패한 사례들은 기독교 선교가 동남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동남아시아인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실패한 이유가 되고 있다.

특히 서구 기독교가 동양을 향한 선교의 역사는 동양에 대한 식민지 정책과 밀접하게 결탁되어 있었음이 밝혀졌음으로 서구 기독교의 선교의 역사는 어느 곳에서나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현대 기독교 선교의 침략성의 공통된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분석하려면 멀리 로마 제국시대로 거슬려 올라가야 한다. 그 때 당시 영토확장과 경제적 이해관계로 기독교 선교가 전개되었으며 비잔틴 동방교회의 분열의 역사도 기독교 분열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한국의 기독교는 아직도 서구화된 기독교를 제3세계에 선교해야 한다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혼란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 한국 기독교의 동남아시아 선교, 무엇이 문제인가?

세계 기독교 선교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오늘 한국의 기독교는 아직도 서구화된 기독교 선교방식을 추종하면서 제3세계 선교를 역설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한국의 기독교는 가는 곳마다 수치와 부끄러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한국 기독교의 상항을 살펴보면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도대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심각한 질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도시들의 건물 위에 높이 솟은 십자가는 밤이 되면 빨갛게 도시를 뒤덮는다. 이렇게 급성장한 한국 교회는 세계 사회학자들의 기이한 호기심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자연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이다”라고 설교하는 교회가 바로 한국의 교회들이다. 이러한 한국 교회가 극성스럽게도 동남아시아에 기독교 해외선교사들을 대량으로 보내면서 교세확장을 과시하고 있다.

오늘 한국에는 수백개의 신학교가 난립하여 수천명의 졸업생을 해마다 배출하고 있다.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 졸업생들이 사명의식 보다는 자신의 밥그릇을 위한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한국의 기독교가 해외로 선교사들을 대량으로 보내면서 한국의 교세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가짜 학위 논문이 정치권에서 유행처럼 문제시 되고 있는 것처럼 가짜 목사도 많으며 가짜 선교사도 허다하다. 진실된 종교적 지도자가 매우 귀중한 나라가 바로 오늘의 한국이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개교회주의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라는 허상이 한국 교회를 망쳐놓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의 개교회들은 정부의 통제나 소속된 교단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고 교회마다 해외 선교사를 제멋대로 마구 파송하고 있다. 개교회들은 헌금을 거두어 들이는 방법으로 선교사 파송을 역설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2천년 선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였다. 기독교 선교의 참뜻은 타인과의 만남이며 타인을 변화시킴이다. 하지만 타인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동시에 내가 변해야 된다. 내가 변한다는 것은 인격적 수양과 종교적 경건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변하기 위하여 타민족의 인격을 존중히 여기고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자기의 변화 없이 동남아시아에 가서 마구잡이 선교를 열정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러한 선교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참된 선교의 길은 타인을 주체적 존재로서 이해하고 타인의 문화와 토속 종교의 정체성을 가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히 여겨야 한다. 기독교 선교는 타인과 공생이 가능하며 차이점과 동질성을 인정하는 만남의 관계를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는 절대로 사업이 아니라 사명이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한국 교회의 선교는 서구 문명의 가진 자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해탈한 동양적 정신으로 새롭고 굳게 무장한 자세를 소유해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 동남아시아 선교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2013년 1월 3일)


<자주민보>에도 실렸습니다.

유태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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