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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용서를 구하지도... 장준하선생 가족도 용서한적도 없다. 지난 5일 오전 11시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인규명을 위한 개묘(開墓)가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있었다. 이날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씨는 회한에 눈시울을 붉혔다.
문정현 신부는 "범인이 누구인지 다 아는데 어떻게 그게 의문사냐 박정희에 의한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장준하 의문사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문 신부는 고 장준하 선생이 사고를 당했던 1975년, 박정희 정권 사주로 의심되는 의문의 트럭에 무릎이 깔리는 사고로 인해 평생동안 다리를 절게되는 부상을 입은바 있다. 이날 기자는 칼럼리스트 김승자 선생의 초대로 고 장준하 선생 가족이 살고 있는 서울의 아파트를 방문하여 아내 김희숙 씨와 차남 장호성 씨를 만났다. 칼럼리스트 김승자 선생은 최근 골수암으로 미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증세가 호전되어 보고 싶은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고, 자신에게 사상의 기초가 된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와 그 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장준하 선생의 아내 김희숙 여사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만났다. 김희숙 여사는 20평의 작은 임대아파트지만 이렇게 살 수 있고,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찾아와준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손님들을 반가운 얼굴로 반겨준 김희숙 여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감사와 은혜를 돌려주고 싶어서 예쁜 실로 수세미와 손뜨개 주머니를 떠서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예쁘게 뜬 손뜨개 선물을 받은 손님들은 너무나 기뻐하며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써요"라고 말하자, 김희숙 여사는 "또 뜨면 되요. 다 가져가세요"라고 화답했다. 김희숙 여사는 기자에게도 "마음에 들면 가져가요"라면서 아기옷 모양으로 뜬 예쁜 수세미 몇 장을 챙겨주셨다. 덕담이 오가는 가운데 장준하 선생, 그리고 장준하 선생을 죽도록 괴롭혔던 독재자 박정희와 그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장준하 선생댁 현관에 걸려있는 사진 ⓒ 백은종
손님들의 질문에 김희숙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8년을 24시간 감시를 당했어요. 어디 취직도 못하고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그랬지요. 감시하는 사람에게 화를 냈지요. 성당도 못가느냐고. 그랬더니 그럼 빨리 다녀오시라고 그래서 겨우 성당에는 나갔지요. 성당에서 사람들이 쌀도 주고 이것저것 줘서 살았지요. 정말 감사하며 살아요. 장선생 덕분에 사는구나." 김희숙 여사는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를 당하고 독재정권하에서 감시받으며 살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손님들은 "박정희 감시가 너무 심해서 담으로 먹을거 던져서 드리고 그랬던 것도 유명하죠."라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장준하 일가를 고사시키기 위해 장준하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취업도 막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것 또한 불이익을 주어 막았다고 한다. 만일 장준하 가족에게 쌀이든 약간의 돈이라도 도울라치면 그 사람의 일을 망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연행한 후 조사하는 등 도저히 살 수 없게 만들었다고...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화기애애 하던 분위기는 이날 손님 중 한 사람의 말에 잠시동안 침묵에 휩쌓였다. "박정희 씨 따님 박근혜 씨는 아버지 죽고 남은 대통령 사저가 좁아서 꼼짝도 못했대요. 대지 100평에 건물 30평이라는데."
찾아와준 손님들과 대화를 하며 선물을 나눠주는 장준하 선생 부인 김희숙 여사 ⓒ 백은종
김희숙 여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침묵으로 그 답을 했다. 김희숙 여사는 "박근혜가 예전에 찾아와서 무어라 말을 했느냐, 용서를 빌더냐, 무슨 말씀을 하셨냐"는 이어지는 질문에 "아무말도 안했다"고 답했다. 박근혜가 용서를 구하지도 장준하 선생 가족들도 용서한적도 없음을 분명히 한 것.
한편 이날 손님들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난 누구 찍으라고 사람들한테 안해요. 단지 투표 꼭 하세요. 잘 뽑으세요 라고 하지"라고 말했다. 또한 김희숙 여사는 고령의 나이와 독재정권 시절 고생으로 인해 현재 협심증 증세가 있어 성당외에는 바깥출입을 줄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백은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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