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스러운 울 아빠
  • 입력날짜 2021-05-25 16: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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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마전 136호] 영등포구민 공현숙 님이 영등포시대 편집국의 추천을 받아 ‘사랑스러운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를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5월 20일 새벽 3시 30분, 이 시간에도 활동하고 계실 그리운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올해 팔순을 맞이한

우리 아버지는 작은 체구에 온몸에 근육들이 불끈불끈 솟았었지만, 올해 팔순을 맞이한 현재의 모습은 얼굴은 검고 근육도 모두 사라져 힘도 약해지셨다.

일 욕심이 많아 겁 없이 일을 늘리며 억척스럽게 일하시던 아버지는 이제 하루 일하고 하루 쉬어야 하는 할아버지가 되셨다.

아버지의 생신날은 모심을 때와 겹치지 않은 적이 없다. 비가 내리는 오늘도 모를 심느라 분주했을 아버지. 생일날 새벽부터 논에 나가 일하시고 들어오셔서 생신상이 차려질 때까지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렸다가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또다시 들로 나가신다.

농사일이 먼저인 아버지와 아버지의 생신상이 먼저인 자녀들의 웃지 못할 신경전이 펼쳐진다. 그런데 올해는 모가 안 자라서 생신 다음 날부터 모를 심게 되었다. 팔순 생신상을 만족스럽게 받으실 수 있었다. 올해의 모가 참으로 효자 중의 효자요! 큰일을 해냈다. 아버지는 절대 모심는 일과는 그 어떤 일과도 타협하지 않는 분이시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의 쉬는 모습보다는 일하시는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먹고 살 만 하다면서도 사시사철 농사와 가축 기르기, 그리고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공사 현장에 나가 일을 하신다,

아버지는 일이 없다고 해서 쉬는 날이 없다. 새벽 4시쯤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디지털시계 불빛에 의지해 물 한잔 들이키신 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모자와 장갑을 챙겨서 마치 당신이 새벽인 양 어둠 속으로 조용히 나가신다.

어쩌다 집에 가면 아버지가 커다란 나무뿌리를 이용해 탁자 등 공예품을 완성해 놓으셨다가 딸에게 은연중에 자랑 스러워 하신다. 내가 봐도 잘 만드셨다.

그러고 보니 등산, 노래, 만들기 등을 좋아하는 나는 아버지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 나도 작품까지는 아니지만, 손으로 하는 일들은 제법 해내고 좋아한다.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이것을 천직으로 알고 일하던 내가 아픈 큰딸을 낳고 그 좋아하는 일을 놓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나름대로 자신 있게 세상을 사는 나지만 아버지의 부지런함만은 닮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제일 받고 싶고 닮고 싶은 부지런함이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내 핸드폰 속 아버지의 닉네임은 ‘사랑스러운 울 아빠’다. 팔순인 지금도 여전히 참을 수 없게 귀여우시다. 팔순 사진을 위해 열심히 화장한 아빠 볼에 느닷없이 뽀뽀하며 건강하게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고 더 힘든 날도 오겠지만 걱정은 그때 하자고요. 앞으로 일은 좀 줄이시고 좋아하시는 등산과 취미활동 시간을 조금 더 늘리시고 오래도록 함께해요.

아버지 코로나19가 잠잠해 지면 제일 먼저 가족 여행부터 가요. 귀여운 우리 아버지와 함께라면 어디든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될 테니까요. 아버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년 5월 20일 새벽 4시 30분
딸 공현숙 올림
 

공현숙(영등포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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