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영동 1985' 영화가 끝나고 맺히는 눈물
  • 입력날짜 2012-11-24 06: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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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2시간 감독과 배우는 2달간 실제 당한 사람은 평생동안

영화를 본 직후 복 받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터져나올 것 같은 분노와 울분을 2시간 동안 간신히 참아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참아냈기 때문인 듯 진이 빠진 기분이었다. 그저 멍하니 스크린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 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영동 1985>는 사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감정이 메마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다.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느꼈던 고통과 아픔은 분노와 연민 등과 뒤섞이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고문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고 내용의 대부분이 잔혹한 고문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만 장면 장면에서 복잡한 인간사의 감정들이 담겨 있다. 그 감정 속에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되고, 치 떨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러닝타임 2시간 동안 온 몸의 기운이 싹 빠져나간 기분이 들 만큼 깊은 몰입감을 안겨준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된 직후 주연배우 박원상을 안고 흐느껴 울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 인재근 여사는, 이 영화를 응축해서 나타낸 모습이기도 했다.

<남영동 1985>는 27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렇게 먼 시대의 기억이 아니다. 70년대 이후 세대에게는 얼마 전까지 경험했던 우리의 현대사의 시간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숨 막히던 시절, 독재에 맞서던 사람들은 하나 둘 끌려갔고 음험한 곳에서 상상하기 힘든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평생 트라우마로 간직해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남영동 1985>는 독재정권 시절 자행된 야만적 모습을 2시간 동안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 준다는 데서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책으로, 이야기로, 간간이 TV나 영화를 통해 보던 장면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문의 실상에 대해 확실히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시절 발생했던 수많은 조직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 졌는지도 알려준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이 직접적으로 전달돼 올 만큼 사실적이다.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단순히 고문의 묘사가 아닌 한 인간을 무너뜨리면서 그들이 만들어 내고자 했던 음험한 공작의 실체를 고발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자 했던 독재정권의 무모함은 고문과 같은 잔혹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현대사를 관통했던 수많은 조직사건이 어떻게 창조됐고 빨갱이로 몰렸는지를 <남영동 1985>는 분명하게 알려 준다.

고문을 통해 피폐화 되는 한 인간의 모습과 함께, 태연하게 야구중계를 듣거나, 진급을 이야기하고, 개인사를 말하는 고문 경찰의 겉모습은 지독한 위선처럼 다가온다. 그저 평범한 일반인들처럼 보이지만 갑자기 고문의 괴수로 돌변하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의 모델로 등장한 실제 고문기술자의 최근 행동을 연상시킨다.

고문의 주범이었던 이근안은 감옥에서 나온 후 어느 날 목사가 되고서는 고문을 예술로 치장하며 떠들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고,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뻔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투병하던 김근태 전 의원이 돌아가면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가 제대로 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자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김종태의 눈빛은 공감이 갈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하기 어려운,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영화의 묵직한 뒷맛이기도 하다.

정지영 감독은 “관객은 2시간 힘들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은 2달 동안 힘들었고 실제 당한 사람은 평생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 말의 의미는 자연스레 다가오게 될 것이다. 뜨겁게 맺히는 눈물과 함께. 영화의 미덕이다.

성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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