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사조정 제도 운용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
  • 입력날짜 2013-07-12 10: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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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사조정이란 무엇이 문제인가.
엄경천 변호사
엄경천 변호사
가사조정이란 가정 또는 친족 사이의 분쟁에 관하여 가사소송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가정법원이 행하는 조정이고, 조정이란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합의를 하면 조정조서에 그 합의내용이 기재되는 방식으로 분쟁해결을 도모하는 제도를 말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제27조)하고 있다. 가사소송법은 ‘가사사건에 대하여 가정법원에 소를 제기하거나 심판을 청구하려는 사람은 먼저 조정을 신청하여야 한다’고 규정(제50조)하고 있는데, 이를 ‘가사조정 전치주의’라 한다.(실무상 조정전치주의의 예외가 넓게 인정된다)

가사조정 제도의 실제 운용모습을 보면 당사자의 인격훼손과 재판의 공정성, 더 나아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의 주요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사조정 제도의 운용 모습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지 등 몇 가지 문제점을 검토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해 본다.

가사조정의 ‘조정기관’과 조정전치주의의 위헌성

가사조정 사건은 조정장(판사) 1명과 2명 이상의 조정위원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 또는 조정담당판사가 처리(가사소송법 제52조)한다. 또한 조정위원은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으로서 매년 미리 가정법원장이 위촉한 사람 또는 당사자가 합의하여 선정한 사람 중에서 각 사건마다 조정장이 지정(가사소송법 제53조)한다. 가사소송법상 조정기관은 법관(판사인 조정장 또는 조정담당판사) 단독 또는 법관이 포함된 조정위원회다.

민사조정법에 의한 민사조정은 민사 분쟁의 당사자가 법원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이고, 가사조정과는 달리 본안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되는 단계는 아니다.

가사조정위원이라는 법관이 아닌 사람이 실질적으로 재판절차에 개입하여, 헌법상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정의 실제 모습을 보면 ‘당사자 소송’의 경우 조정위원의 이치에 맞지 않는 법적의견 표명에 따라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당사자의 인격 침해나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하는 언동은 말할 것도 없다. 가사조정의 실제가 이와 같다면, ‘가사조정 전치주의’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면이 있다.

조정위원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조정위원 중에 일부가 첫마디로 ‘나는 기록을 모두 보아서 사건을 잘 파악하고 있다. 이미 결론은 나 있다’고 한다면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간혹 법관의 말실수가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절대 다수의 법관은 ‘판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법관은 상대적 진실(과거의 사실을 경험하지 않는 제3자가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보고 나름대로 발견한 진실)을 전제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적게는 수개월 길게는 1~2년 또는 그 이상 심리를 한 법관도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상대적 진실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명예직(무보수, 비상근) 조정위원이 ‘나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조정위원이 가사소송법에서 정한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이라서 사회경험 등이 많기 때문에 법관보다 사실관계 판단을 잘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변호사 또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태도를 갖는 변호사에 대해서 ‘변호사들은 조정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조정은 필연적으로 일부 패소이기 때문이다’라는 지적을 한다면 이는 옳지 않다. 이혼만 청구하는 가사사건이나 친자사건 또는 등기사건이나 차용증이 있는 대여금 사건 등 증거에 의하여 어떤 사실이 인정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전부승소 또는 전부패소인 사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가사사건과 민사사건은 전부승소보다 일부승소 즉 일부패소가 더 많다는 것을 변호사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조정 기일의 실제 모습

△조정위원 가운데는 중국국적 동포 등 가난한 나라 출신 결혼이민자를 대할 때 반말 또는 훈계조로 당사자를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정위원이 이치에 닿지 않는 말로 당사자를 몰아붙일 때 변호사 입장에서는 침묵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변호사가 이를 지적하면 조정위원은 마치 법관(수소법원)을 통하여 재판 결과를 불리하게 만들겠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조정기일 진행과 무관한 모욕적인 질문(상속사건에서 피상속인의 후처(後妻)와 전처(前妻) 소생의 자녀 사이의 분쟁에 관한 조정기일에 후처가 언제 피상속인과 혼인을 하였는지, 처음 만나 후 혼인을 할 때까지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다. 후처가 피상속인과 그 전처 사이 혼인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는 예단이 없다면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다. 더구나 상속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이다)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이것을 지적하는 변호사에게는 ‘내가 십수 년 동안 가정법원 조정위원을 보았지만 당신 같은 변호사는 처음본다’는 식으로 면박을 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정위원이 조정기일에 당사자 앞에서 굳이 스스로 ‘나는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은퇴하였다’거나 ‘오랜 기간 동안 선생님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하였다’ 등으로 자신의 학식과 덕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위원도 있다고 한다.

△‘내가 십수 년째 조정위원을 하고 있고, 조정위원 모임의 장도 맡았기 때문에 법관들도 내 말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재판절차와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있다. 조정위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정기일에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사조정 제도의 개선 방안

△가사 분쟁은 이혼이든 상속이든 기본적으로 법률문제다. 가족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이라고 법을 도외시하고 조정위원이 나이와 경험으로만 밀어붙여서는 분쟁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가사 분쟁이 법률문제이므로 조정위원은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위촉되어야 한다.

적어도 조정에 참여하는 조정위원이 2명이라면 1명은 변호사 자격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학식과 덕망이 없는 사람’은 조정위원으로 위촉되어서는 안된다는 소극적 사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정위원에 대한 당사자들의 평가가 조정위원 재위촉시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조정위원은 ‘당사자가 합의하여 선정한 사람’으로 지정되거나 적어도 ‘당사자 일방이 배제되기 원하는 사람은 지정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사소송법도 ‘조정위원은 당사자가 합의하여 선정한 사람 중에서 조정장이 지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53조 제2항). 조정성립 가능성을 높이고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를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종전 조정제도를 사실상 중재(仲裁)제도로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더 나아가 가사사건에서 중재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현행 민법 및 가사소송법에 의하면 협의상이혼과 재판상이혼 제도를 두고 있어서 중재제도를 통한 이혼은 불가능하다). △조정위원이라는 지위를 영리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은 조정위원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조정위원이 운영하는 부부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당사자로부터 조정위원이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법관으로도 일을 하는 것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담당 법관과 연고를 찾아서 오는 의뢰인이 적지 않은 현실과 전관예우 문제가 끊이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욱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다. △변호사가 조정을 싫어한다는 지적이 옳지 않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다만, 외부 조정위원이 사실관계 파악이 되지 않고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언급을 하면서 자신의 고집을 부리고 심지어 사건 당사자를 하대하거나 면박을 주는 경우라면 변호사가 조정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는 사건내용을 잘 알고 있는 법관(재판장이나 주심판사)이 맡아 진행하는 수소법원 조정을 선호한다.

엄경천 변호사는 가사전문 변호사로 법무법인 가족 소속이다.

엄경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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