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마•전 흔적을 찾을 길이 없는 사랑하는 아버님 전상서!
  • 입력날짜 2019-08-28 16: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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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93호에 이어 다섯 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남기필 님이 1939년 7월에 태어나 다섯 살이 되던 1943년 8월 일본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머나먼 타국에서 고인이 되신 아버님, 남달우 임께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버님 얼마나 고통 속에서 사셨나요?
차라리 재혼하셔서 가족이라도 있었으면 그 후손들을 만나 아버님 묘소라도 찾을 수 있었을 텐데요.

저는 1950년 12살 되던 해에 6.25를 맞았습니다. 나라가 어수선하던 때에 다리를 다쳐 치료를 3개월 동안 못 받다 보니 다리가 썩어 왼쪽 다리 전체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장애인의 몸이 되었지만 살아야겠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양복기술을 배워 양복점을 운영하여 고향에 논과 서울에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3년 정부 지원에 사할린 땅을 밟아 살아생전에 아버님을 알고 지냈다는 신구봉 님을 만나 잠시 아버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님과 신구봉 님도 고인이 되셔서 아무도 아버님은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슬픔이 밀려옵니다.

올해 6월 4일과 8일 사이에 감사하게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피해자 지원단에서 항공료를 지원해주셔서 사)일제강점기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 잔류유족회 신영순 회장님, 그리고 유족 후손과 큰아들을 데리고 2차로 방문하여 아버님 묘소로 추정되는 보르나 스키공동묘지에 가서 온종일 찾아봤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KBS에서 취재해서 8월 9일 방송에도 나왔습니다. 이역만리 낯선 땅 사할린에서 일본놈들에게 끌려가 혹독한 노동과 고역을 겪으시고 돌아오지 못한 채 피를 토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또 눈물이 납니다. 이제 제 나이도 여든한 살이(81세) 되었습니다. 저도 어서 가서 아버님과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두 누님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꿈에서라도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일본놈들은 지금도 사죄에 반성 그리고 보상금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얘기 그동안 우리 어머니와 형제들이 살아왔던 얘기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아버님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두 누님을 만나고 계신 아버님 하늘이 저를 부르면 그때 다시 만나요. 다음 생에 다시 만나, 못다 한 효도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 기필 올림
 

남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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