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탑 위의 세 노동자 언제 땅을 밟을 수 있을까?
  • 입력날짜 2013-03-10 05:52:14 | 수정날짜 2013-03-10 15: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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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만 되면 발이 따갑고 간지러워서 숙면을 취하기 힘듭니다”
2013년 2월 26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송전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농성이 99일째를 맞는 날이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고공농성 날짜를 알리는 알림판에 숫자를 ‘98’에서 ‘99’로 갈아 끼우고 있었다. 의료인은 나를 포함한 한의사 둘, 재활의학과 의사 한명 간호사 한명까지 총 네 명이었다.
우리를 태우고 올라갈 사다리차가 대기 중이었고, 구급차와 경찰병력도 배치되어 있었다. 모두 한 번에 올라갈 수 없어서, 취재를 맡은 기자들과 섞어서 2명씩 총 3회에 걸쳐 올라가기로 결정하였다.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할 나와 기자 한 명이 먼저 사다리차에 올랐다.

안전모와 안전장치를 착용하고 약 1분여 만에 하늘농성장에 닿을 수 있었다. 세 사람(한상균 전 금속노조 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 수거 부지회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판자로 설치한 바닥은 발을 디딜 때 마다 흔들거렸고, 난간 너머로 내려 보이는 땅위의 풍경은 아찔했다.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할까?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안내를 받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공중에 떠 있는 천막이지만 백일동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기본적인 생필품들이 곳곳에 정돈되어 있었다. 벽에는 신문 기사 스크랩들이 붙어있었고, 태백산맥을 포함한 책들도 몇 권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바빠도 커피는 한 잔 마시고 시작하시죠.”

가방 속에서 진료소품을 꺼내는 나와 노트북을 펼치는 기자에게 한 전 지부장이 말했다. 복 수석이 타주는 커피를 받아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며 진료를 시작했다. 한 전 지부장은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으로 구속된 후 수감생활 때 걸린 동상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밤만 되면 발이 따갑고 간지러워서 숙면을 취하기 힘듭니다.”

동상 후유증은 발을 자주 씻어주어야 한다. 물도 귀하고 추위에도 고스란히 노출되는 환경에서 좋아질리 만무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손만 꼭 잡아드렸다. 다른 한의사가 동상에 좋다는 한약을 보내온 것이 있어서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좀 놓였다.

복 수석은 허리가 아프다. 허리가 아프면서 다리 한쪽이 심하게 당긴다. 신경뿌리 병증이 의심된다. 허리랑 다리 쪽 근육들도 심하게 긴장되어 있다. 복 수석은 앉아있을 때가 가장 괴롭다고 한다.

이런 허리로 장시간 앉아있으면 안 된다. 이런 몸으로 비좁은 공간 내에서 백일 가까이 견뎠다는 사실을 놀랍다. 처음에는 사정을 모르고 자꾸 자리에 눕는 젊은 수석(셋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에게 타박도 많이 한 모양이다.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운동법 몇 개 알려주고 나서 힘주어 말했다. “최대한 오랜 시간을 누워서 보내십시오.”라고.
 
문 지회장은 어깨가 아파 철탑 아래 반가운 사람이 와도 손을 못 흔들 정도다. 송전탑에 오르기 전에도 치료를 받던 어깨다. 괜찮을 줄 알고 올랐는데 점점 나빠지고 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밤에 잘 때다.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자리는 비좁아 아무리 노력해도 편치가 않다. 한 번의 치료지만 조금이라도 편해지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시간을 들여서 어깨 근육을 풀어드렸다.

진료를 하는 내내 옆에서는 기자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한 전 지부장은 스스로 올해의 키워드로 ‘치유와 용서’를 꼽으며 3%도 안 되는 소금이 바닷물을 정화하듯이 시민들의 양심에서 찌든 사회를 치유하는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또한,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도 쌍용자동차의 갈등을 풀어냄으로써 국민대통합의 첫발을 떼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어느새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났다. 밑에서는 안 내려 오냐고 성화다. 자꾸 무엇인가 빠트린 것 같아 신경이 자꾸 쓰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뜨겁게 인사를 나누고 무거운 마음으로 사다리차에 올라 다시 땅을 밟았다. 내 뒤를 이어 올라간 간호사는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과 수액주사를 하고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올라간 재활의학과 의사는 진통제 주사를 놓고 내려왔다.
▲ 왼쪽이 글쓴이 김원식     ©김원식
▲ 왼쪽이 글쓴이 김원식 ©김원식
 
내가 그냥 흘려보내는 하루가 그들에게는 매일매일 전쟁이리라. 병마와 싸우고 추위와 싸우고 사회의 오해와 편견에 맞서는 전쟁. 아마 죽을 만큼 힘들 것이다. ‘이제 그만 내려오면 안 되겠냐’ 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더 안타까웠다. 그 싸움이 그들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고, 가족과 동료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2013년 3월 3일 새벽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의지했던 대한문 앞 분향소가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희망의 상징이자 집 같은 공간을 어이없게 잃고 말았다. 이들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려가고 있다. 대한문 분향소마저 불타버린 지금. 철탑 위의 세 노동자는 언제야 땅을 밟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김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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