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즈비언 결혼식'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 입력날짜 2012-12-21 03:53:22 | 수정날짜 2012-12-21 04: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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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지매의 뉴욕 여행기] 레즈비언 들의 행복한 결혼식
뉴욕의 가을은 ‘센트럴 파크에서’ 라는 뉴요커 말에 맨해튼 시내도 구경할 겸 버스를 타고 공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달리던 버스가 정거장에서 멈췄다. 두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듯한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려 했다. 버스기사는 차를 길에 세워 둔 채 그 아주머니 손을 잡고 건널목 두 개를 건너 주곤 천천히 되돌아왔다. 그동안 버스 승객들은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센트럴파크 © 임춘신
센트럴파크 © 임춘신
 


다음 정거장에서는 휠체어를 탄 아저씨가 내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버스기사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당연하다는 듯 그를 부축해 안전하게 내려 주었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사람들은 당연한 듯 기다려 주었다.

그 사이 게이로 보이는 두 남자가 버스 안에서 사랑 고백을 하고 생일 축하 노래까지 하는 이벤트를 벌였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이 흥미로운 사건을 본 척도 하지 않다니. 대 놓고 보고 싶은 것을 참느라 난 실룩거리는 얼굴 근육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려운 사람을 배려할 땐 아낌없이 하고 개인들 사생활엔 전혀 개의치 않는 뉴욕의 문화에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센트럴파크 앞은 흑, 백, 황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뿜어내는 빨갛고 노란 빛에 숨이 멎을 지경이다. 그 속에 독일, 프랑스, 한국, 아랍 등 세계 각국 언어들이 춤을 추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피부빛깔의 사람들을 다 받아들이고서도 한가하고 고즈넉하게 가을을 즐길 수 있는,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원이 뉴욕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음이 참으로 부럽다.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고 있는 고급 아파트가 눈에 띄었다. 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아파트는 웅장함과 ‘윽’ 소리 나는 가격 때문에 관광객들이 한번 쯤 침을 ‘꼴깍‘ 삼키며 바라보는 곳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잠시 궁금해졌다. 그러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녀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에 ‘아이고, 행복 보따리는 저기에 있네.’하며 그녀들 모습을 따라 미소 짓는다.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고 있는 고급  아파트    © 임춘신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고 있는 고급 아파트 © 임춘신
 


여행객들의 모습은 늘 보아도 좋다. 환한 웃음과 활기가 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그들은 즐겁기만 하다. 뉴욕에서 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길거리 핫도그를 먹어보는 것이다. 2$짜리 핫도그를 한입 베어 물고 고개를 드니 건너편에 있던 유럽 아줌마도 핫도그가 한입 가득이다. 우린 금방 친한 친구가 된 듯이 함께 웃으며 또 즐거워진다.

공원 곳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트럼펫을 불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이곳 흥을 돋우고 있다. 행복해 하는 레즈비언들의 결혼식도 보인다.
신부는 흰 드레스에 빨간 벨트를 신랑은 흰 바지에 빨간 셔츠를 입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들러리 소녀들도 보인다. 마냥 즐거워하는 들러리 소녀들을 보며 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졌다. 부모들도 함께 하고 있다.

작년부터 뉴욕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됐다.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 그녀들에게 관광객들의 눈이 멈춘다. 아직은 낯선 모습이어서 인가. 그녀들이 사진 찍는 동안 잠깐 내 옆에 앉았던 그녀들의 아버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축복해주려 애쓰는 부모의 마음이 내게까지 전해져온다.

레즈비언 결혼식      © 임춘신
레즈비언 결혼식 © 임춘신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순리대로 살기를 원하는 나지만 이곳에서 동성연애자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바뀌려한다. 소호에 갔을 때다. 길을 가고 있는 세 남자를 보고 ‘그래, 저렇게 행복하면 되지.’하는 마음이었다. 유모차에 사내아이를 태우고 가는 게이부부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꽃핀을 머리에 꽂고 재잘재잘 대며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던 그 남자 모습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얼굴에 하얀 가루를 바른 아줌마가 보인다. 쌀쌀한 날씨에 짧은 발레복을 입고 발레 하는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그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걸까?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전해져 온다. 뭔가 새로운 것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 나도 저 아래에 있는 어떤 것을 꺼내어 표현하고 싶은 마음, 이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러 사람들은 뉴욕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나보다. 모두를 다 받아들이고서도 넉넉하고 여유로운 이 공원에서 나도 한가득 에너지를 받아 얼굴이 발갛게 물든다.

<안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임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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