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 앓고 홀로 삭이고 홀로 인내, '일흔 나이의 상념'
  • 입력날짜 2013-01-01 03:22:50 | 수정날짜 2013-01-01 05: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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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년 내 몸살 감기로 고생했다. 칠 팔월 무더운 여름철에도 감기를 달고 살았다. 가을에 날씨가 쌀쌀해지면서는 재채기가 나면서 감기가 시작됐다. 그 해가 끝날 무렵까지 무려 석 달이 넘도록 계속 아팠다.
뼈마디가 쑤시고 열이 났다. 두통과 오한으로 오슬오슬 떨렸다. 좀 나은듯싶어 병원 감기약을 끊으면 다시 재발 했다. 옆 사람과 몸이 부딪혀도 살이 아팠다.

골도 터질 듯 쑤셔오고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멍청한 눈으로 하루 온종일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끙끙 앓았다. '아이구나, 나 죽는구나, 아이고, 아이고!' 엄살까지 곁들였다.

기침을 하면 가래까지 섞여 나왔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기운도 없고 숨까지 가빴다. 급기야는 기관지염으로 도지게 되었다.

죽을 때에는 이보다 더 많이 아프다가 목숨이 끊어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죽는 것보다 아픔이 더 두려웠다. 임종할 때 겪어야 할 고통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단골로 다니던 내과 병원 문을 다시 두드렸다.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받아왔다. 생전 먹지 않던 한약까지 한 제 지어왔다. 병이 조금 나아지는 듯 해서 하루 외출하면 그 다음 날엔 또 기침이 심해지고 으스스 하다가 병이 재발되곤 했다.

감기가 오래가면 다른 병을 검사해 봐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혹시 무슨 암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왈칵 솟구쳤다. 중병에 걸리지 않고서야 웬 감기가 이리도 오래 간단 말인가.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한 주먹씩이나 되는 알약을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먹었다. 온몸이 약에 취해 뼈 마디가 녹아 나는 듯 했다. 소화도 안되고 정신까지 몽롱해진다. 더 이상 병원에 다니기도 지겨워졌다.

누구라도 옆에 있어 죽이라도 좀 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한결 위로도 되고 병세도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감기 몸살을 참지 못해 자식들에게 전화로 내 아픔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완전히 늙어서 운신을 하지 못하게 될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의 간병을 받아야 할 텐데, 벌써부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인생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영국 시인 롱 펠로우의 말처럼 세월은 화살처럼 날아간다. 눈깜짝할 사이에 머리에 서리가 덮이고 동시에 인생은 저녁을 맞게 된다.

세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이제는 나 혼자 단출하게 살아간다. 애들 뒷바라지에서 벗어나니 내 여가 시간이 많아졌다. 마음 내키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인생은 어느 나이고 다 살 만하다. 80 나이도 끔찍스러워 할 이유가 없다. 건강만 유지한다면 그다지 슬퍼할 이유가 없다. 병들어 자리에 누워야 할 때가 문제인 것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턱이 진 곳을 잘못 짚어 아차 하는 순간에 넘어졌다. 이마에 멍이 들어 정형외과에 가서 X-Ray 사진을 찍고 한동안 집안에서 푹 쉬었다. 이 때에도 나는 내 아픔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자식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삼 년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옛 속담이 생각난다. '당신은 착한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너무 그래도 못 쓴다' 며 나를 답답한 인간이라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 자식도 품 안에 있을 때 내 자식이다. 결혼해서 제각기 자기 처 자식이 있을 때와는 다른 것이다.

자녀들로부터 효도 받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물질적으로도 의존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접받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친구나 친척은 물론 내 아이들에게까지도 폐 끼치는 일은 딱 질색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80이 넘으셔서 어머니를 먼저 보내시고는 퍽 외로워 했다. 급기야는 치매 증세까지 왔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쓸쓸해 하시던 아버지의 고독을 위로해 드리지 못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자주 찾아 뵙지 못했다. 말벗이 되어 쓸쓸함을 달래 드렸어야 했는데 집안 살림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다.

내 자녀들도 자기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고 정신 없이 바쁠 것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낼 만큼 한가하지 않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자리에 누워계실 때에도 나는 정성 들여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찾아 뵙고는 집으로 급히 달려와 내 아이들 뒤 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차피 홀로 병들고 홀로 앓고 홀로 신음하기 마련이다. 병원에 가도 의사는 냉담하다. 의과대학에서 배운 대로 약 처방만을 해주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완전히 늙어서 내 몸을 가눌 수 없을 때는 양로원에 가서 마지막 삶을 마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자녀들에게, 또는 지인들에게 부담 주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홀로 앓고 홀로 마음으로 삭이고 홀로 인내 할 것이다. 일흔 나이에 느끼는 상념(想念)이다.

김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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