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은 발포 명령권자가 아니라 사격명령권자다”
  • 입력날짜 2019-05-13 20: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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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장 허장환 특별기자회견,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군사정보관으로 25년간 재직했던 김용장(사진 오른쪽) 씨와 당시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 허장환(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는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영등포시대
군사정보관으로 25년간 재직했던 김용장(사진 오른쪽) 씨와 당시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 허장환(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는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영등포시대
1980년 5·18 광주항쟁 당시 미국은 미 국방성과 미국 국무부 등 두 개의 채널로 정보를 입수했다는 증언과 함께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80년 당시 미 육군 501 정보여단 광주 파견돼서 MIS 한국말로는 군사정보관으로 25년간 재직했던 김용장 씨와 당시 국군 보안사령부 특명부장 허장환씨는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9년 동안 말하지 않은 사안이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용장 씨는 “1980년 5월 당시 국무성 직원 CIA 요원 온 사람도 없었다”며 자신은 “유일한 한국인으로 상부에 대략 40번 정도의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김용장 씨는 “39년 동안 말하지 않은 사안으로 오늘 광주에 직접 본 사안만 말씀드린다.”며 “먼저 북한 침투설. 침투설은 전두환이 만든 허위 날조된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용장 씨는 “북한군 600명이 광주왔다는 주장은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얘기다”며 “20대 혹은 30대 젊은이들로 구성된 남한 특수 원은 짧은 머리에 일부는 가발을 썼고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렸으며 그중에는 거지처럼 넝마 걸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광주로 보낸 사람은 바로 전두환 보안사령부였다”고 폭로했다.

김용장 씨는 “이 밖에도 광주 국군 통합병원에서 이뤄진 시신 소각 헬기 사격 광주교도소 습격 공수대원들에 의한 성폭행 이런 것들이 자신의 첩보 속에 들어있었다.”고 밝혀 풍문으로 돌던 내용이 사실임을 증언했다.

80년 당시에 보안사령부 국보위 특명반에 책임 맡고 있었던 허장환 씨는 “왜 광주민중항쟁이 오랜 세월 동안 미궁이었고 특조위 구성해야 할 정도로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허장환 씨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특조위 결정되고 진실을 밝혀도 이념이 다른 정부가 들어오면 또 뒤집는다”며 “다시는 잔학무도한 이런 만행이 우리 역사에 점철되지 않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증언을 결심하게된 배경을 설명했다.

허장환 씨는 지금까지 왜 광주의 역사를 39년이나 끌었는가?라고 반문하고 그 이유로 “보안사가 광주를 평정하고 제일 급박 하게 한 일이 자기들 자행 범행 숨기기 위해 기구를 만들었는데 그 기구가 바로 5.11 대책 분석반이다”고 주장하고 “그 활동에 의해서 518 광주가 덮였고 정치적 사안이됐다”고 강조했다.

허장환 씨는 “전두환은 발포 명령권자가 아니라 사격명령권자다”고 주장하고 “발포는 초병에나 해당하는 말이다”고 강조했다.
허장환 씨는 “5.18 광주항쟁 당시에는 전두환이 당연히 모든 작전권, 통수권 가지고 있었다”고 밝히고 “다른 병력은 한미 지침에 의해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공수특전단을 제외된다. 그래서 광주에 공수특전단 투입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허장환 씨는 “아무리 특조위가 조사해서 결론을 지어도 이념이 다른 정부가 들어오면 또 뒤집는다.”고 강조하고 “봉인을 하지 않으면 이 문제 또 변조될 수 있다”며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강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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