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지는 학교 앞 문구점, 살릴 방법은?
  • 입력날짜 2015-10-08 16:30:23
    • 기사보내기 
김형태 경제칼럼
학습준비물 제도, 학교 앞 문구점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 그림의 떡
어린 시절 등하교 때, 또는 쉬는 시간 이용해 친구들과 함께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이런저런 먹을거리와 학용품을 고르며 작은 행복을 느끼던 추억의 장소, 학교 앞 문구점.

그러나 이런 동심 어린 학교 앞 추억의 문구점이 한둘씩이 아니라, 1년이면 천여 개씩 무더기로 사라지고 있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1999년 전국의 문구 소매점 수가 약 2만7000개였는데, 2009년에는 약 1만8000개로 10년간 34% 감소했고, 2013년에는 1만 3,496개. 1년에 천 개 정도의 문구점이 문을 닫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시가 43개 생활밀접 형 자영업종을 조사한 ‘2013년 서울 자영업자 업종지도’에 따르면 문구점은 다른 업종에 비해 창업보다 폐업이 많은 업종으로, 학교 인근 영세문구점들의 경우 대부분 하루평균 매출이 6~7만 원 이하로 실제 소득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한다. 문구소매업의 감소에는 학생 수 감소, 주5일제 수업으로 인한 영업일 수 감소 등도 있으나 문구업계에서는 가장 큰 영향으로 ‘대형마트의 학용품 판매매출 증가’와 ‘학습준비물 무상지원제도’를 손꼽고 있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는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이 필요한 학용품을 일괄구매해 지급하는 제도다.
학부모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차원에서 좋은 취지의 참 편리한 제도이긴 하지만, 색상과 디자인 등 아이 개인의 선택권이 배제된 것은 물론 최저가 입찰제를 적용하다 보니,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생산한 저급 제품도 제공되는 등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동네문구점 역시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입찰에 참여할 길은 열려 있다.
그러나 사실상 도매상과 같은 지위에 있는 수입업자들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기 일쑤다. 결국,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는 동네 문구점들에게는 ‘이르지 못할 나무’, ‘그림의 떡’이다.

무엇보다 현재 학습준비물의 예산이 학생당 전국 평균 3만 원에 불과해, 사실상 실험실습을 1년에 3만원어치만 한다는 것이다. 3만 원이라는 금액에 묶여서 그 이외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지원되는 예산이 있고, 그것을 학부모들이 다 알고 있는데, 추가로 개인적으로 구매해 오라 하면 반발하거나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준비물을 이용한 수업도 3만 원이라는 금액만큼만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당연히 수업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학생준비물 예산을 크게 늘리지 않는 한, 현재의 제도는 문구업계를 어렵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교육을 오히려 부실케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셈이다.

학습준비물 쿠폰제 및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등 지혜 모으면 해법과 대안 나와

그리고 문구업계는 학교에서 학습준비물을 일괄적으로 입찰을 통해서 구매하지 말고 일부는 학생들이 문구점에서 직접 사도록 쿠폰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충남교육청에서는 시범적으로 학습준비물 쿠폰제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반응과 만족도가 높다며 속히 전국적으로 퍼지기를 바라고 있다.

문구업계의 눈물겨운 투쟁 끝에,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9월 22일 문구 소매점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내년 신학기부터 대형마트는 종합 장과 크레파스, 사인펜 등 일부 품목에 대해 묶음단위로만 팔게 돼, 동네 문구점의 숨통이 다소 트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등학생용 물품 18개에 한해서는 낱개판매를 못 하고 묶음으로만 판매를 허용한다. 묶음단위 판매가 허용된 문구는 △종합장 △연습장 △일반연필 △문구용풀 △지우개 △유성매직△네임펜 △일반색종이 △스케치북 △형광펜 △교과 노트(전 과목) △알림장 △일기장 △받아쓰기 △색연필세트 △사인펜세트 △물감 △크레파스 등이다.
예전에는 학교 앞에 몇 개씩이나 되던 문구점들이 어느 순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복지 제도가 영세 상인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현행 학습준비물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교육청, 학교, 입찰시스템 등 집행 당사자와 관련 업계가 지혜를 모아, 복지의 혜택은 늘리면서 골목상권과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 마련이 필수로 보인다.

정부 여당에서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해준다면서 학습준비물 문제를 가장 첫 순위에 손꼽았으나 결과적으로 문구업계에 실망만 안겨주었다고 들었다. 결국,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개선 의지가 중요하다. 학습준비물 쿠폰제와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등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나름대로 해법과 대안이 나오지 않는가?

이제라도 교육부 등 관계 당국은 더는 뒷짐 지고 있지 말고 정면에 나서 ‘골목상권 보호하기’, ‘경제민주화’, ‘착한 소비’ 차원에서 접근해, 무상교육의 본연의 취지는 잘 살려가면서, 이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영세한 문구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김형태<전 교육의원>

김형태 전 교육위원
<저작권자 ⓒ 영등포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