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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공생하는 공화주의 실현으로 정치인 이해찬을 넘어서야!
정치인 이해찬의 서거는 ‘이해찬 시대’의 종료를 말해준다. ‘이해찬 시대’란 무엇인가. 적대적 진영 정치로 대한민국 정치가 극도의 난맥상을 보이는 ‘정치 실종’의 시기를 말한다.
그 전만 해도, 심지어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운동 때도 여야가 낮엔 싸우더라도 밤이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하며 협의하며 협치를 이뤘었는데, 작금의 여의도는 여야 간 식사도 하지 않을 만큼 적대적 관계가 되었다. 민주주의 정치란 원래 다른 이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인데, 이런 비민주적 정치 현실이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며 투쟁했던,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진보좌파 정권 때 권력 중심부에 대거 들어오면서 오히려 비롯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거기 네 차례 진보좌파 정권의 사실상 호메이니옹 역할 했던 정치인 이해찬의 영향이 컸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판 법정 최후진술에서 “당신들의 총칼에 죽어간 이 영혼들을 위로하는 길은 이 땅을 민주화하는 길뿐이다. 나는 이 목숨을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워나가겠다. 나는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다고 일갈했던 이해찬, “1987년 이전까지는 민주화였고, 그 이후부터는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었다”라며 자신의 인생을 회고했던 이해찬. 그 꿈의 실현을 위해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런 만큼 민주주의 정치의 요체인 타협할 줄 몰랐던, 상대 진영을 적으로 간주했던 독선적인 정치인 이해찬이 서 있는 자리는 늘 갈등과 대립이 만개했었다. 그의 서거 소식 앞에서 극도로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필자와의 인연도 그러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함께 할 때는 운동권 선배로 바라봤지만, 문민 시대로 들어와서까지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는 그의 독선적 행보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그리는 장애인복지 운동가인 필자에겐 점차 비판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그 후 오랜 세월 그의 정치적 사언 행위와 행보에 대해 많은 비판을 했는데 다름 아닌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는 그의 행보 때문이었다. 특히 대단히 반민주주의적 그의 마음이 드러난 말이 “보수궤멸”, 이 말은 사회통합을 정치하는 목적으로 삼고 있는 필자에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런 마인드를 지닌 그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네 차례 진보좌파 정권의 실세로 자리 잡고 있었으니, 어찌 우리 정치가 적대적 진영 정치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해찬의 그런 적대적 진영 정치 영향은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 절대적이었다. 당시 최소 20년 장기 집권을 꾀하며 ‘적폐 청산’이란 미명하에 “보수궤멸”을 위한 레짐 체인지 작업을 맹렬히 추진하다가 뜻밖에 윤석열이란 돌발변수 때문에 5년 만에 정권교체 당해 뜻을 이루지 못하다 다시 그의 정치적 아들 이재명을 대통령 만드는 산파 역할까지 하고 열정을 쏟다 지병에 쓰러진 것이다. 하필 그의 마지막 ‘세상 자리’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라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의 직속상관이 되는 기묘한 인연이 되었다. 그를 마지막 만난 것 역시 지난해 12월 2일 킨텍스에서 거행된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 회의 자리로 무대에 올라 활동 방향 보고 및 의결을 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어하는 모습에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서두에서 정치인 이해찬의 서거로 적대적 진영 정치의 ‘이해찬 시대’가 종료되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직 우리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헌법 제1조에서 천명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다른 이들과 공존 공생하는 민주주의 정신 곧 공화주의 실현으로 정치인 이해찬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그가 평생을 꿈꾸었던 민주화 시대를 진정으로 이루는 것이 될 것이다.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 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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