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중규 칼럼-시대유감] 87년 체제 ‘5년 단임 대통령제’ 유감
  • 입력날짜 2025-04-22 15:25:41
    • 기사보내기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회 자문위원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회 자문위원
대통령이 탄핵당해 중도 퇴임했다. 벌써 두 번째다. 아무리 높은 권세도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 이른바 ‘87년 체제의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선 ‘권불오년(權不五年)’이 되었는데, 이제 대통령 탄핵으로 그 ‘권불오년’마저 채우지 못하고 퇴임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987년 헌법이 ‘5년 단임제 대통령제’로 개정된 후 ‘87년 체제’에서의 여덟 번째 대통령 퇴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돌이켜보면 퇴임 후 행복하게 보였던 대통령은 없었다. ‘5년짜리’ 대통령 시대의 악몽 같은 악순환을 보는 느낌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자’라는 여론이 거세지는 이유다. 흔히 5년 단임제를 ‘제왕적 대통령’이라 비판하지만, 내게는 그 ‘5년’에서 대통령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기력의 폐해만 보인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 그 5년을 되짚어 보자. 당선 후 첫해는 정권 인수 시기에다 국정에 적응하는 일종의 ‘인턴 시기’라 할 수 있고, 2년 차에 본격적으로 개혁을 시도하면 벌써 기득권 저항에 부딪힌다.

3년 차에 접어들면 레임덕이 시작되고 역사에 남을 업적은커녕 실정만 눈앞에 잔뜩 쌓은 대통령은 퇴임 후를 걱정하며 잠 못 이룬다. 그런 초조함은 권력형 비리 유혹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지난 38년 동안 줄곧 반복된 ‘87년 체제’의 실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오랜 세월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고선 제대로 꿈도 펼치지 못하고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개혁 작업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펼쳤던 YS와 DJ는 민주화 투쟁을 하며 오랜 세월 준비했던, 거기에다 수십 년에 걸쳐 자신들을 따르는 계보(인재 풀)를 지닌 보스였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 6월 시민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을 끝낸 1987년, 군부 쿠데타나 독재정권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로 연임제를 폐지하고 단임제로 한 것이지만, 내겐 단견으로 보인다(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단임제를 했다는 일설도 있다).

이처럼 우리 정치의 폐해는 1987년 급조된 헌법에 기초한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문제의 뿌리가 닿아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5년짜리’ 정부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무언가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거기에다 ‘87년 체제’는, 특히 선거법에서 두드러지지만, 그 승자독식 구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이념과 지역 갈등 시대를 연 실마리가 되었으며, 지난 38년간 우리 사회를 이토록 ‘찐한’ 진영 전쟁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한국 정치를 바꾸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재도약하려면 ‘87년 체제’ 탈피부터 해야 하는 이유다.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회 자문위원

박강열 기자
<저작권자 ⓒ 영등포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