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중규 칼럼-시대유감] 해방 후 80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 입력날짜 2025-04-08 15: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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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회 자문위원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회 자문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서울대병원에서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환자 1천여 명을 총살한 사건에 대해 ‘집단학살’로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발생한 지 75년 만이고, 진실화해위가 출범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노무현 정권이 우익 정권이나 국군과 미군에 의한, 이른바 ‘양민 학살’ 진상을 밝히기 위해 세워진 진실화해위가 11월 활동 만료를 앞두고 그 마지막 결과물이 북한 인민군에 의한 ‘양민 학살’ 진상을 밝혀낸 것은 사회통합 차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진보 진영에서 이승만 정권 시절의 이른바 ‘양민 학살’ 관련 비판할 때마다 반박 논리가 그러했다. 좌우 세력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이 격렬했던 해방공간은 한반도 전체가 두 진영이 생사를 걸고 벌인 내전 시기였는데, 좌익 쪽만 일방적으로 희생당했을 리가 없고 서로 그야말로 동족상잔 참극이 벌어졌다.

4.3 참극도 그러했다. 당시는 북한 김일성이 남한을 적화통일 하려고 남한의 좌익 세력을 총괄하고 있던 남로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4.3 참극이 빚어진 것이니, 우리가 흔히 ‘국가 폭력’의 희생자로 규정하는 4.3 참극 희생자조차도 가해자-피해자 그 피아 구분이 힘들 정도였다.

3년 전 학술대회 참석차 제주도에 갔을 때, 나는 4.3 참극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 보고자 4.3평화공원은 물론이고 4.3 참극 관련 장소는 죄다 둘러보았다. 그중에 가슴을 울렸던 곳이 제주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英慕園)’이었다.

시대정신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그 ‘마음’ 때문에 존경하는 박명림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4.3 참극을 처음으로 ‘민중항쟁’으로 규정했던 그가 4.3 참극의 실체적 진실에 더욱 다가가면서 발견해 4.3 참극에 대한 기존 생각을 완전히 바꾸도록 만들었다는 ‘영묘원’, 제주도민 스스로 자발적으로 4.3 참극의 이른바 피해자와 가해자의 영혼을 함께 모신 ‘영모원’은 박 교수가 나를 만날 때마다 얘기하던 곳이기에 꼭 들르고 싶었던 곳이었다.

4.3 참극의 후손들 곧 제주도민들이 이른바 ‘국가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그처럼 한 곳에 함께 모신 이유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4.3 참극의 주동자 우두머리 몇몇을 제외하곤 민초들은 그가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두 역사의 사건에 동원된 희생자로 여긴 것은 아닌가.

사실 적대적 진영 정치와 이념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자였던 민초들은 오히려 늘 탈진영 비 이념적이었다. 6.25때 국군이 내려오면 태극기 흔들고, 인민군이 내려오면 인공기 흔들었다는, 살아남기 위해 그런 몸부림쳤던, 살아가기 위해 한쪽에 줄 썼던 민초들 아닌가.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정치권의 분열 정치 ‘놀음’은 거기 희생당하는 민초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끝내야 한다고 보는 이유다. 시대정신으로 ‘사회통합’을 꼽고, 결국 우리 사회가 적대적 진영 정치에서 벗어나 ‘합의제 민주주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는 내게 화해와 상생의 평화정신을 실천한 4.3 참극의 유적지, 애국열사, 호국 군경, 4.3 참극 희생자 위령비를 한 곳에다 세운 영묘원의 위령단(慰靈壇)은 감동 그 자체로 다가왔다.

해방된 지 80년, 대한민국 역사에서 아픈 과거사는 죄다 치유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도록 할 때가 되었다. 인생사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서민들 가정도 집안이 잘 풀리면, 가난하고 힘든 시절 가족 간에 쌓였던 상처들 용서해 주며 하나로 껴안게 된다.

대한민국, 지난 80년 갖은 고난과 시련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고서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거기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도 모두 한몫했던 것이니, 서로 공로를 인정해 주며 한마음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만드는 데 힘 모아야 할 때다.

정중규 대한민국 국가 원로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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