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택이 형!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 입력날짜 2024-04-23 08: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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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규 문래예술인회의 의장이 배지훈 ㈜선유공방 대표의 릴레이 추천으로 최영택(공연연출) 감독의 옛 모습을 그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민규 문래예술인회의 의장
▲한민규 문래예술인회의 의장
영택이 형!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남자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이라, 좀 심각하게 어색하네요. 형도 그러시겠지만 조금만 견디세요.

그동안 바쁜 척을 하느라 한 번도 형을 찾지 못했습니다. 역시나 제가 그렇지요. 어렸을 때는 제가 형을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바쁜 척하네요. 생각해보니 손가락을 꼽기도 어려운 세월이 지나갔네요.

형을 처음 만난 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 국내의 음악계에 아는 이가 전혀 없는, 이른바 아싸였던 저를 끌고 다니며 형은 그 수많은 이들을 소개해주시고 형이 하시는 모든 공연과 프로젝트마다 부족한 저를 기용하셨습니다.

무대에서나 술자리에서나 사람들에게 저를 자랑스러워하시고 제게 조금이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너무나 순수하게 기뻐하시던 형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형의 시그니쳐였던 특유의 웃음소리도 그립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형에게 칭찬도 받고 기타도 받고 멀티리코더와 수많은 것들을 받았는데 형 앞에서 형을 칭송하지도 않았고 술 한번 산 적이 없네요. 물론 그건 후배나 동생은 술값을 내면 안 된다는 형의 철학을 빙자한 고집 때문이었지만요.

조금 더 형에게 아부해 볼까요? 다른 이들은 말한 적 없을지 몰라도 형의 기타도 정말 그립습니다. 따뜻하고 유연한 그리고 정제된 음색이 말이지요. 노래할 때는 다른 사람이 되는 형의 선선한 목소리도 그립고요. 그리고 예술가인지 철학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철학에 천착하며 공부하시던 모습도 그립습니다.

다른 후배들과는 달리 저는 유독 형하고 논쟁도 많이 벌이고 대들기도 했는데 형은 단 한 번 제게 화를 내신 적 없고 싫은 소리 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나중에 형의 친구, 선배들에게 자주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영택이는 뭐든 신기하고 좋은 것을 보면 이거 민규 사주면 좋아하겠다 하면서 꼭 구매하셨다고요.

이렇게 형과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형이 작곡한 노래를 형의 목소리와 연주로 녹음 못 한 것이 아쉽고 형의 소중한 그 수많은 작업이 사라진 것이 아쉬워요. 지금의 저의 작품 중에 미덕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형에게서 비롯된 것인데, 형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작업을 이제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30여 년 동안 형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했네요.
형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형을 만난 것이 감사하고 저의 형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식가이고 애주가셨던 영택이 형, 평안 속에서 형이 좋아하시던 그 모든 예술과 놀이를,
그리고 맛난 음식과 술 마음껏 즐기시기를.

한민규 문래예술인회의 의장 드림

206호 2024년 4월 23일 발행 배포
 

한민규 문래예술인회의 의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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