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이 재난이다!
  • 입력날짜 2022-09-07 12: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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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이 드러난 불평등, 사회적 약자를 지킬 근본 대책은?
이윤진(진보당 영등포구위원장)
이윤진(진보당 영등포구위원장)
8월 8일 가장 많은 비가 쏟아진 시간에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물 폭탄’이다. 와이퍼를 최대로 올려도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수년 동안 하수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장했고 하천 수위 관리 시스템, 인명구조 시스템을 구축했으니 제발 큰 피해가 없기를 바랐다. 해마다 사망자가 나오는 도림천 인근에 살고 있으니 더욱 촉각이 곤두섰다.

그러나 바램과 달리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가 계속 늘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영등포구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을 뿐, 집 안에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주민들의 눈물겨운 사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등포구는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군 장병들까지 나서 폐기물 긴급 수거 작업 등 발 빠른 수해복구 활동을 벌였다. 자원봉사센터에 등록한 자원봉사자 외에도 자발적으로 수해복구 활동에 나선 주민의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동별 자연 재난 피해 신고 접수창구가 마련되었고 피해가 가장 심한 대림2동은 피해를 본 주민들이 신고하느라 줄을 섰다.
물을 퍼내고 가구를 옮기고 이불을 말리면서 우리는 생각했다. ‘내년에도 이런 비가 또 올 텐데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나?’

기후 위기로 한층 심각해진 폭우, 폭염, 한파 그리고 바이러스와 같은 재난은 모두의 일상을 뒤흔들지만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몸이 아픈 사람, 일을 쉴 수 없는 사람을 가장 먼저 쓰러뜨린다. 재난은 불평등을 타고 사회적 약자들을 더 극심한 불평등으로 내몬다. 이번 집중호우는 죽음과 파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불평등을 드러냈다. 특히 주거 불평등 구조가 너무 큰 대가를 치르며 민낯을 드러냈다. 부자들은 외제 차를 잃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집을 잃거나 생명을 잃었다.

침수 위험뿐 아니라 습기, 곰팡이, 벌레와 싸우는 일상을 견디며 지하·반지하에 사는 가구가 2020년 기준 32만 7천여 가구다. 반지하에 살고 싶어 사는 사람은 없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반지하를 선택한 불평등 구조가 재난을 만든 것이다.

“세월호 생각이 나.”
304명이 구조되지 못하고 수장된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는 한 학부모가 노인, 장애인, 아동을 돌보던 40대 가장이 가족을 구하지 못하고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말이다. 국가는 어디 있었는가 말이다.

폭우를 뚫고 고층 아파트로 퇴근한 대통령, 세월호 참사 발생과 함께 사라진 대통령의 7시간이 생각났다. 더 많은 개발로 반지하를 없애버리겠다는 시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대책으로 해경을 없앨 때처럼 황당했다.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국회의원, 가난과 재난이 그들에겐 사진 쇼 벌일 기회인가 싶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우리의 외침은 단지 사건을 기억만 하고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안전 사회를 만들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실천적 다짐이었다.
이번 폭우와 피해자를 기억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부터 쓰러뜨리는 재난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는 일이어야 한다. 민낯이 드러난 기후 위기 불평등, 주거 불평등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지킬 근본 대책을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다시 이런 안타까운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급히 실천해야 한다.

이윤진(진보당 영등포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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