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사설] 목포는 함구다
  • 입력날짜 2019-03-14 08: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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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동안 잠자고 있는 도시 목포
김종현 (전 민주당 목포시 지역위원장) ⓒ영등포시대
김종현 (전 민주당 목포시 지역위원장) ⓒ영등포시대
3.1항쟁 100년이다
1594년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목포시민들은 유달산 노적봉에 볏짚을 쌓고 횟가루를 영산강에 뿌리며 밤이면 고하도에서 횃불을 켜놓고 강강술래를 하였다.
이는 많은 군사가 밤늦게까지 훈련을 하고 엄청난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명량해전 당시 12척의 거북선 뒤에 지역의 모든 선박이 정렬해서 300척의 일본 군함이 겁먹고 도망가다 울둘목에서 수장을 당한다. 이 같은 결과는 목포권에 사는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이루어 낸 승리다.

이순신은 1593년 7월 16일 사헌부 持平(지평) 玄德升(현덕승·1564~1627) 에게 보낸 편지에 『호남은 국가의 보루이며 방벽이니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입니다(湖南國家之堡障 若無湖南 無是國家).』이라고 썼다.

1897년 고종이 자주 항으로 선포하며 개항을 한 목포는 일본에는 300년 묵은 복수를 할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하고 일본 조계지를 만들고 국도 1호선(목포-신의주)과 국도 2호선(목포-부산)의 기점을 목포로 설정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1913년 호남선 철도를 개통하면서 조선 수탈의 근거지로 만들었다.

“목포의 눈물” 노랫말 2절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그러나 목포로 모여든 조선사람들은 1898년부터 목포 부두노동자들의 파업이 지속하였고 파업하는 부두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1명의 관리자가 노동자 10명을 관리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이름하여 십장이다. 조선에 십장 제도가 최초로 실시된 곳이 목포다.

조선의 3대 항 6대 도시 목포
목포 제유 공장∙면직공장∙정미소∙내화벽돌공장∙어망공장∙고무신공장∙면화공장 등 목포는 조선이 산업화로 나아가는 실험지였다. 목포는 해방 이후 열악한 SOC 투자와 산업시설 재배치에서 소외되면서 목포에 근거지를 둔 산업시설들이 목포를 떠나 서울, 포항, 부산, 이천 등으로 이전하고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이 소멸하면서 쇠퇴하였다.

기업이 소멸하고 쇠퇴하면서 만들어진 공간이 100년 동안 잠자는 일본의 조계지구이다. 70년 동안 방치된 목포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목포 원도심 살리기 위해 필자는 (당시 민주당 목포시 지역위원회 위원장) 2017년 9월 23일과 2017년 11월 29일 각각 ‘목포 근대 미래’, ‘문재인 정부의 서남권 해양수산발전과제’를 주제로 지역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목포 원도심
살리기’ 사업이 문재인 정부 100대 정책과제 중 “호남고속철 2단계 사업 조기완공” 등을 포함해 6개 과제로 선정되었다.

목포 사람들은 국가의 위기는 민족의 아픔이라는 살아있는 교훈의 장소로 목포를 재조명하고. 목포는 ▲국가위기에 나라를 구한 곳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는데 첫 번째 실험지 ▲정치적 차별로 사람과 기업이 꺼린 곳에서 탈피 ▲민주주의를 완성한 곳(평화적 정권교체) ▲다시 생동감 있는 도시로의 부활을 꿈꾸는 곳이다.

그동안 목포 사람들은 지역 소외에 침묵하면서 50년 만의 정권교체까지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하여 온몸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자긍심만 간직하였다. 기득권을 유지하며 국가위기를 초래하는 정치권은 혁신하고 민족적 평화공생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앞서 모 연구원 정책강연회에서 밝혔듯이 목포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해 “투기냐, 투자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두 의원은 그동안 도시재생사업을 준비하고 진행해온 목포 사람들의 마음이 더는 상하지 않도록 자중자애하며 목포시 도시재생사업이 계획대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자면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순신은 호남 출신이 아니다. 이순신은 1545년 음력 3월 8일 德水(덕수) 李씨 貞(정)공과 草溪(초계) 卞씨 사이의 3남으로 서울 乾川(건천)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으며 덕수 李씨는 文廟(문묘)에 配享(배향)된 栗谷(율곡) 李珥(이이)를 비롯한 대제학 5명, 정승 7명을 배출한 조선의 명문가로 꼽힌다.

김종현 (전 민주당 목포시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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