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 인터뷰]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 입력날짜 2015-12-22 06:07:19 | 수정날짜 2015-12-28 09: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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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출범한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을’을 위해 현장을 누볐다"
"을지로위원회 활동은 저 자신에게도 새정치민주연합에도 큰 자산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시종일관 자신의 찬 모습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과 동시에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간 우원식 의원 ©영등포시대
시종일관 자신의 찬 모습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과 동시에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간 우원식 의원 ©영등포시대
“‘을’의 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해결책을 찾아낸다. 이것이 곧 현장행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측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거나 겁박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사측에서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을 반기는 측면도 있다”

현장 행정을 강조하는 우원식 의원에게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이 ‘갑’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묻자 거침없이 돌아온 답이다.

노·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을 막고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 기업에서도 마냥 싫어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이 답이다”라는 슬로건을 신조로 19대 의정활동을 시작한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과의 인터뷰는 12월 14일 의원회관에서 일문일답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영등포시대 이선근 전무이사와 박강열 기자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박강열 :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
우원식 : 연말을 맞아 지역행사가 적게는 6~7개 많게는 12개까지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참석하고도 지역구민들에게 혼난다. 왜냐하면, 12개의 행사에 얼굴이라도 보이려고 하면 한군데서 오래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웃음)

▶이선근 : 한 시간 뒤에 다음 일정이 있다고 하니 질문을 몰아서 하겠다. 출생지, 출신학교는?
우원식 :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박강열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동기는?
우원식 :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노태우 후보에게 패한 뒤(3위) 1998년 2월 문동환 목사와 재야인사 98명을 영입해 당을 재정비했다. 그때 입당한 98명 중 일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우원식 의원은 인터뷰 중 우리강 보도순례 대장정을 함께한 환경단체들이 강을 걷는 국회의원 우원식이라는 이름으로 전달한 감사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영등포시대
우원식 의원은 인터뷰 중 우리강 보도순례 대장정을 함께한 환경단체들이 강을 걷는 국회의원 우원식이라는 이름으로 전달한 감사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영등포시대
▶이선근 : 환경에 관심이 많은 국회의원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와 정치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우원식 :인터뷰 시간이 짧게 잡았다고 큰 질문을 한꺼번에 두 개씩 하는 것은 “갑”질 같다. (웃음)
대한민국 국회의 중 환경단체와 함께 ‘5대강 보도순례의 대장정을 마친 의원은 제가 유일하지 않나 생각된다. 17대 때인 2005년 섬진강(212km)을 시작으로 2006년 금강(396km), 2007년 한강(482km)까지 보도순례를 마쳤다. 그리고 2008년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떨어진 후 낙동강(522km) 순례를 마쳤다. 낙선 후 낙동강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강행했다. (웃음)

▶이선근 : 5대강 순례라고 했는데?
우원식 :19대 국회에 들어와서 영산강(136km)을 끝으로 보도순례를 마쳤다. 4대강 사업을 원망하며 내 쉬던 지역 주민들의 한숨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박강열 : 5대강 보도순례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애피소드가 있다면 한 가지만 소개해 달라?
우원식 : 꼭 한 가지여야 하는가? 두 개 하겠다. (웃음) 보도순례를 처음 시작할 당시 “정치인 우원식이 얼마나 걷겠어, 가다가 말겠지.” 라는 조소와 함께 진짜 다 걷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 보도순례에 참여한 환경단체가 있었다. 물론 보도순례를 마칠 때는 그 불신이 신뢰로 바뀌었다. (저 우원식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정치인에 대한 불신에서 온 애피소드라고 생각한다.)

▶박강열 : 다른 한 가지는?
우원식 : 보도순례는 식사를 제때 하기 어렵고 노숙은 다반사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6. 25도 겪지 않았다는 전북 장수군 수분리 마을회관에 묵었을 때 일이다. 반바지에 덥수룩한 수염, 밀짚모자 차림의 국회의원이 마을에 왔다며 구경나온 주민들과 밤이 깊도록 막걸리를 함께 했다. 당시 동네 주민들은 군수의 행정에 대한 자잘 못을 모두 이야기 하더라. 이곳은 청년회장이 67세였다. (국회의원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웃음)

▶이선근 : 정치인으로서 가장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 일은?
우원식 : 수없이 많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2013년 출범한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을’들을 위해 현장을 누빈 것이다. 을지로위원회 활동은 저 자신에게도 새정치민주연합에도 큰 자산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선근 : 영등포시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을지로 위원회’의 뜻과 작명경위를 설명해 달라?
우원식 : 당시 ‘을’들의 자살, ‘갑’들의 욕설사건이 난무했다. ‘을지로 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약자인 ‘을’들의 먹고 사는 문제와 갑을관계를 정상화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원회의 이름은 보좌진들과 여러 날을 고민하고 검토한 후 결정한 것이다. 당시 ‘을지문덕위원회’, ‘ 을 위한 길’, ‘을을 위한 법’ 등 많은 이름이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 ‘을지로 위원회’로 결정했다. 제 아내가 ‘을지로위원회’라는 이름이 제일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당시 가장 큰 문제였던 남양유업 본사가 을지로에 있었다. (민병두 의원도 일조했다. 웃음)
11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종소상인 살리기 결의대회에 이종걸 원내대표와 나란히 참석한 우원식 을지로 위원회 위원장(사진 오른쪽) ©영등포시대
11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민주화-종소상인 살리기 결의대회에 이종걸 원내대표와 나란히 참석한 우원식 을지로 위원회 위원장(사진 오른쪽) ©영등포시대
▶이선근 : 을지로위원회의 대표적인 활동을 소개한다면?
우원식 : 22명의 의원으로 출발한 우리 을지로위원회는 현재 47명의 위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불공정 갑·을 관계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 기자회견, 증언대회 등 700건 이상의 현장에서의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이사장이었던 ‘아프리카 박물관’ 노동자 노예계약 사건, 방송케이블 기업인 씨앤앰 하청 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문제 등 여러 불공정 거래, 파업 현장을 찾아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복지, 노동 등 분야마다 책임을 지우는 ‘책임위원제’를 운영하며 소속 의원들이 위원회 활동을 바탕으로 제출한 법안 중 9개가 입법된 상태다.

▶박강열 : 통과된 법안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우원식 : 을지로위원회 1호 법안이자 중소자영업자보호·갑을 문제의 상징법안인 일명 '남양유업방지법’이다. ‘대리점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판매목표 강요, 물량 밀어내기, 욕설 파문 등 불공정 피해 구제 및 제도 개선을 위한 법으로 2013년부터 시작해 2년여 간의 노력 끝에 결실을 본 법안이다.

▶이선근 : 언론들의 반응은?
우원식 : 언론의 반응? 외면으로 일관하다가 오히려 입법권이 기업에 대한 압력을 행사한다고 비판 기사를 썼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메이저 신문의 그 비판 기사도 우리에게는 힘이 됐더라(웃음)

▶이선근 : 위원회 활동 중 만난 ‘을’ 중에 기억나는 사람은?
우원식 : 모두 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굳이 꼽으라면 “함께 싸워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을의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우원식 의원은 ‘을’이 보내온 편지 일부를 공개했다.

[‘을’의 감사편지-1]
함께 싸워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경기도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경 영양사 ○○○입니다.
먼저 저희 의경 영양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또 함께 싸워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번 일은 저희에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위에 계란치기 정도밖에 안 됐던 저희에게 바위 대 바위로 동등하게 싸울 수 있게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을’의 감사편지-2]
저희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무기 계약직 전환이 되지 않은 상태인데요.
다시 계란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열심히 단결하여 뭉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이룬 모든 일이 다시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국회에서도 도와주세요.
잊지 않겠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선근 영등포시대 전무이사(사진 왼쪽)와 우원식 의원 ©영등포시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이선근 영등포시대 전무이사(사진 왼쪽)와 우원식 의원 ©영등포시대
▶이선근 : 너무 딱딱한 것 같다. 여담으로 하나 묻겠다. 저는 우원식 의원을 83년도 가을 춘천교도소에서 정치범으로 만났다. 당시 우 의원이 교도소 내에서 단식투쟁을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엇 때문이었나?

우원식 : (웃음) 당시 돼지고기 정량이 48g이었다. 그런데 10g 정도밖에 안 주었다. 돼지고기 정량을 찾자는 의미보다 재소자의 인권을 찾자는 의미가 더 컸다. 당시의 단식보다 2013년 6월 을지로 지키기 법안통과를 위해 국회에 본청 로텐더 홀에서 윤후덕 의원과 단식하던 생각이 더 난다. 그때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다.

▶이선근 :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탈당했다. 당내 분위기는?
우원식 : (시계를 들여다보며) 저는 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혁신안을 만든 사람이다. 우리당이 몇 사람의 탈당으로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표가 슬기롭게 중지를 모아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이선근 : 영등포시대의 인터뷰 요청을 받은 후 느낌은?
우원식 : (다른 일정에 대한 보좌관의 독촉이 이어지며) 인터뷰 요청을 받은 후 영등포시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박원순 시장의 창간축하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박강열 : 무슨 뜻인지?
우원식 : 영등포시대가 서울시 최초 주민 주주신문으로 창간되었으며 경영과 편집권 분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았다. 주민자치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도로 생각되지만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강열 : 끝으로 영등포시대 독자들에게 한 말씀
우원식 : 영등포시대의 무궁한 발전과 영등포시대 독자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편집자 주] 새해의 소원은 “당연히 국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라고 밝힌 우원식 의원, 영등포시대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준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우원식 의원에게 감사드린다.

이선근/ 박강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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