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영등포구 사랑의 온도는 이미 100℃ 이상
  • 입력날짜 2022-01-13 1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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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일(영등포구청장)
채현일(영등포구청장)
지난 12월 7일 한 할머니가 신길1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100만원권 수표가 든 흰 봉투를 건네며 “아무리 힘들어도 힘닿을 때까진 계속 기부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댁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25년째 이웃 사랑을 실천하신 분은 신길 1동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박 씨(67세) 할머니. 코로나19로 여관의 주 이용자인 외국인 노동자도 떠나고 ‘달방’을 살던 사람들도 월세를 지불하지 않고 도망치기 일쑤. 수입이 줄어 여관 운영이 힘든 상황이지만 기부를 위해 매일 3천 원씩 모았다고 한다.

박 씨 할머니와 같은 구민들의 정성 덕분에 영등포구 사랑의 온도탑은 지난 12월 31일 100℃를 넘겼다. 사랑의 온도탑은 이웃돕기 모금 캠페인의 상징물이다.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1℃씩 올라가 목표액을 달성하면 100℃에 도달하게 된다. 1월 5일 기준 전국 사랑의 온도탑 평균이 90.7℃이고 서울시 평균이 85.5℃인 것에 비해, 영등포는 모금을 시작한 지 47일 만에 목표액을 초과 달성했다.

사랑의 온도탑으로 상징되는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는 소외된 이웃들을 돕기 위한 대표적인 겨울철 모금 운동이다. 지난 11월 15일부터 2월 14일까지 18억 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다. 지난겨울에는 19억 4,723만 원을 모금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장기간 경기가 얼어붙은 점을 고려해 모금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목표액도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지난해 보다 낮춰 잡았다. 그러나 예상은 한 달 보름여 만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주민들이 보내 주신 소중한 성금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 요긴하게 쓰인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하는 일들의 틈새를 메워주는 소중한 자원이다. 저소득 주민이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전기나 수도가 끊길 위험에 처했을 때와 같은 시급한 상황에 주로 사용된다. 노숙인 시설의 식료품 지원과 저소득 아동 및 청소년들의 학습지를 사는 데에도 보탠다. 또한, 최근에는 학대받은 아동의 심리치료와 사회복지시설에서 코로나19 방역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들은 기업과 개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금액도 동전 몇 개부터 수천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문래동의 홈쇼핑 업체는 지난해 1억 원에 이어 올해 5천만 원을 기부했다. 양평동의 샴푸 제조업체도 5천만 원이 넘는 샴푸와 마스크 등을 기부했다. 지역의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의 기부도 줄을 잇고 있다.

기업과 단체의 기부와 함께 개인 기부 또한 늘어나는 추세이다. 전국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평균 모금액의 70%가 기업이나 단체 기부이고 30% 정도만 개인 기부인 데 반해, 영등포구의 기부액은 기업과 개인의 비율이 5:5 정도이다. 타 자치구보다 총 모금액이 많은 것을 고려하며 기업의 기부가 적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부가 활성화됐다고 할 수 있다.

개인 기부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 주위를 감동시키며, 이웃 간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켜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양평동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1년간 모은 동전을 주민센터로 갖고 와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영등포시장의 순댓국집 사장님은 수십 년째 라면과 쌀 등의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양평 2동에는 점심 장사로 판매한 된장찌개 매출을 모아 기부하는 가게도 있다. 신길 5동에는 올해도 이름 없는 천사가 찾아와 백미 20kg 100포와 함께 ‘이웃을 위해 써 달라’는 글을 남겼다.

미국의 ‘철강 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기부에서도 많은 기록을 남겼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평생 모은 돈의 90% 이상을 생전에 기부했다. 전 세계 3,000개 이상의 도서관을 짓거나 거액을 기부했으며, 음악가들에게 꿈의 무대인 뉴욕의 ‘카네기 홀’도 그의 기부로 재탄생했다.

비록 카네기처럼 많은 돈을 기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는 신길 1동의 박 씨 할머니나 순댓국집 사장님 같은 분들 덕분에 영등포구는 올겨울도 따뜻하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기부를 이어가는 분들이야말로 추운 겨울 봄을 부르는 사람들이다. 마음 따뜻한 독지가(篤志家)들과 한동네에 살고 있는데 대해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나는 가슴 따뜻한 주민들이 많은 영등포구가 참 좋다.

채현일(영등포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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