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출간 예술가 전진경 작가의 신간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가겠다고 말했다’가(알록출판사간) 출간됐다.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가겠다고 말했다’는 작가 전진경이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에 매주 찾아가서 그림을 그린 4년 여의 시간을 기록한 그림 기록집이다. 농성 천막에서 그린 140여 점의 드로잉 중 40여 점으로 구성됐다. “내가 본 것은 아저씨들 삶의 일부이지만, 작가로서 친구로서 아저씨들과 보낸 그 시간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밝힌 작가 전진경은 ‘이웃과 예술이 필요한 장소에 스스로를 파견’해서 그림을 그려온 작가다. 대추리, 강정마을, 용산4구역과 남일당,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세월호 연장전 등 연대의 목소리가 필요한 현장마다 화가 전진경이 있었다. 2012년 전진경은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던 빈 공장에 들어가 입주 작가로 회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예술이 저절로 피어남을 목격했고, 여러 작가와 노동자들의 협업으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택殿’이라는 게릴라 전시를 열기도 했다. 예술과 연대의 역동을 체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원의 행정대집행으로 콜트 공장이 무너졌다. 해고 노동자들은 거리에 천막을 세우고 복직 농성을 계속했다. 전진경은 개인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무언가 꽤 중요한 게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드로잉 데이’를 만들었다.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 잠깐일 줄 알았던 선언은 농성이 끝날 때까지 4년여 동안 계속됐다. 이 책에는 예술가 전진경이 매주 농성장에 찾아간 이유와 그곳에서 포착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 천막에서의 시간과 빈틈, 공기와 분위기를 담은 이 그림 기록집은 예술과 노동, 아름다움과 쓸모, 이웃과 연대의 경계를 묻는다. 짧은 글과 회화적인 그림의 상호작용은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더욱 아름답고 뾰족하게 전하며, 그림 기록집이라는 새로운 모형을 제시한다. 이 책은 사회에서 이질적으로 취급되는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농성 시간에도 일상과 삶이 흐르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본주의가 해고 노동자들에게 빼앗아 갔던 생기와 유머를 화가 전진경은 자신의 회화 작업을 통해 끄집어낸다. 해고 노동자를 대상화하지 않으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이자 우정과 환대를 나누는 동료 시민으로서, 곁에 선 예술가로서 기록하고 그린다. 부당 해고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목격한 예술가의 담담하면서도 따듯한 시선에서 웃음과 울림이 전해진다. 타인의 슬픔을 정면으로 그리지 않는 마음 현장과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는 예술가의 주체성 긴 시간 이어져 온 연대의 흔적, 자유로운 붓질에서 드러나 작가의 생기와 현장이 주는 활력이 어우러져 그 사이에서 피어난 역동적인 예술 세계, 전진경은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농성 시간에도 일상과 삶이 깃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천막에서 만난 꽃과 새, 도구와 옷감, 갈증과 몸짓을 통해 그 안에 살아 있는 에너지를 포착한다. 사회가 그들에게서 빼앗기도 했던 생기와 유머를 회화 작업을 통해 끄집어낸다. 이런 과정 중에 전진경은 예술과 연대의 윤리, 미학과 태도에 대한 고민을 이어 갔다. 노동자를 완전히 대변하거나 그들과 동일하게 되기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이자 우정과 환대를 나누는 동료 시민으로서 자신의 예술적 행위와 마음을 표출한다. ‘우리는 분명 다른 세계에서 왔으나 그 다름으로 인해 각각의 존재가 더욱 뚜렷해졌고 지지와 연대는 깊어졌다.’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예술가와 노동자가 현장에서 공존하는 일상은 전진경에게 회화적 기법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전진경은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현장에서 피어나는 역동성에 몸을 맡기며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붓질을 했다. 기동성 있는 재료를 순발력 있게 쓰는 과정에서 회화적인 실험과 도전이 이어졌고, 이는 다시 노동자들의 일상을 노크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됐다. 또한 전진경이 가진 유머와 생기는 현장 자체가 주는 고유한 에너지와 만나, 자칫 무거울 법한 이야기에 웃음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라진 현장에 대한 애도와 기억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도착한 마음이 책은 예술가 전진경이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과 천막에서 보낸 4년 여의 시간을 담은 기록집인 동시에, 전진경이 10여 년간 몸담아 온 코뮌이자 광장으로서의 콜트콜텍 복직 투쟁 노동자들에 관한 애도의 기록이다. 자본주의와 노동 멸시에 저항한 노동자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자 한 시대에 대한 묵직한 헌사이기도 하다. 전진경은 콜트 공장에서 날마다 노동자들을 만났던 시기에는 그들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후 공장이 무너지고 복직 농성 투쟁을 하는 노동자 아저씨들을 간간이 만나게 될 때, 이때부터 전진경은 ‘노동자 아저씨들’을 그리곤 했다. 그들을 ‘아는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직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의 싸움 기록이기도 했고, 사회가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노동자들에 대한 응원이자, 경계를 만들고 바깥으로 사람을 추방시킨 세상을 그리는 것이다.
김수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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