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책임을 인정해야 진정한 애도가 이루어진다!
  • 입력날짜 2022-11-09 10: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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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일어날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어디 있었나?
믿을 수 없었다. 너무 초현실적이어서 내가 본 것이 맞나 뉴스를 다시 확인했다. 홍수나 지진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재난이 아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조금 특별했던 일상에서 벌어진 대참사. 우리는 재난의 새로운 역사를 마주했다.

희생된 청년들 대부분은 세월호 희생자들과 같은 세대이다. 안전에 대한 긴장이 높아 경직된 학창 시절을 보냈다. 3년여 코로나 재난 속에 살며 공연이나 축제를 제대로 즐겨본 적 없는 이가 대다수일 것이다. 재난의 긴 터널을 지나온 청년들의 경험과 삶은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그들에게 들어찬 트라우마는 어떤 것일까? 입을 무겁게 만든다.

참사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훌륭했다.
생전 처음이지만 용기 내 심폐소생술 하는 사람, 서로의 손을 잡고 인간 벽을 만들어 가려주는 사람, 팔다리 주무르는 사람, 물을 먹이며 달래는 사람, 업고 뛰는 사람, 자기 차를 내어준 사람 등 재난의 한복판에 있던 이들의 연대 의식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비규환 속에 국가는 없었다.
112 신고가 총 79번 있었고 “압사”, “대형사고” 등 참사를 예고하고 “일방통행”이라는 구체적인 조치도 요청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이를 파악하고 대응하려고 했지만, 컨트롤타워 부재로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행정력을 동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다시 이런 일이 생겨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경찰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외신 기자회견 중 농담이 나오는 한덕수 국무총리, 참사 직전 이태원 파출소 옥상에서 팔짱 끼고 구경만 한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등 행정관료들의 책임 불감증은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외국인 사망자는 무려 14개국 26명이다. 책임이 없다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자국민을 잃은 나라에선 어떤 생각을 할 것이며, 국제적 조롱거리가 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사 이전과 신고가 들어온 시점에라도 국가와 행정이 역할을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경찰청장, 서울시장, 대통령 누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책임자들은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힘 쏟지 않고 책임 회피에 급급하니 어찌 국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가 애도 기간’은 ‘국가 통제 기간’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니라 추모의 시간”이라는 말이 나왔다. 참사, 희생자, 근조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한다.
슬프고 아픈 감정, 절망과 분노 속에 찾아내려는 희망의 근거까지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다.
애도만 해라? 애도 기간이 끝나면 애도를 멈추고 진상규명만 할 것인가? 이제 애도하는 것도 통제할 것인가?

살릴 수 있었다. 진정한 애도는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랏일 하는 자리의 무게다.

이윤진(진보당 영등포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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