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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을 사법화하는 기계적 행정주의를 넘어, ‘학교장 방어적 신고’에서 ‘교육청 중심의 전문적 판단’으로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절대적 가치다. 가정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하고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아동학대 신고의무제’ 역시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서 출발했다.
교원과 의료인, 사회복지 종사자 등에게 신고의무를 부여한 것은 학대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다. 문제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이 제도가 ‘학교’라는 특수한 교육 공간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역설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와 교육활동까지 아동학대 의혹으로 신고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교실에서는 학생을 지도하기에 앞서 “혹시 이것도 정서적 학대로 신고되는 것은 아닐까?”를 먼저 걱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적 지도를 주저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까지 생기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신고 이후의 사법화 과정이다. 학교장이 사실관계와 교육적 맥락을 충분히 살펴보기보다 행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 신고’, ‘기계적 신고’를 선택하게 되면 교사는 정당한 교육활동의 결과로 장기간 피의자 신분에서 조사와 수사를 받아야 할 수 있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교사의 교육적 손발을 묶고, 교실을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는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이것이 현재 우리가 직시해야 할 ‘아동학대 의무신고제의 역설’이다. 보호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교육을 위축시키는 역설! 아동학대 신고의무제의 취지는 분명하다. 학대 사실을 알고도 방치하는 것을 막고 피해 아동을 신속하게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일반적인 아동 보호기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떠드는 아이를 조용히 시키고, 욕설하는 아이의 언어생활을 지도하고, 잠자는 아이를 깨우고,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을 제지하고, 지각과 결석이 많은 학생을 상담하며, 학습 의욕이 없는 학생에게 공부를 독려하는 것 역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이 불쾌감을 느끼거나 반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의 주관적인 불쾌감이나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이 곧바로 ‘학대’가 될 수는 없다. 교육에는 갈등이 존재하고, 생활지도에는 일정 부분 불편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며, 수업을 방해해도 방관한다면 그것은 학생 인권의 보장이 아니라 ‘교육의 포기’가 될 수 있다. 정당한 교육활동과 아동학대를 구별하지 못하고 모든 갈등을 기계적으로 사법적 판단에 넘긴다면 교사는 점점 지도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진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에게 개입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결국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과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사의 교육권 위축은 결국 학생 모두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 현행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신고의무자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되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 지체 없이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고의무자에게 신고의무를 부여한 것은 아동학대의 은폐와 방치를 막기 위한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이러한 신고의무가 학교에서 발생하는 모든 교육적 갈등을 아무런 판단 없이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특히 보호자의 민원이나 문제 제기가 교사의 교육활동 전체를 아동학대 의혹으로 확대할 때 학교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책임 회피가 아니다. 사실관계는 무엇인지, 교사의 행위에 어떤 교육적 목적과 필요성이 있었는지, 법령과 학칙에 근거한 정당한 지도였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명백한 학대나 긴급한 보호가 필요한 사안은 지체 없이 신고해야 한다. 아동학대를 은폐하거나 신고를 지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민원과 갈등을 기계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 역시 바람직한 행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감싸기’와 ‘무조건 신고’ 사이에서 사실과 교육적 맥락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적인 절차다. 이미 사법부는 ‘교육적 맥락’을 보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사법부의 판단 기준이다. 대법원은 교사의 생활지도를 판단할 때 단순히 학생이 느낀 불쾌감만으로 아동학대 여부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이어오고 있다. 대법원 판례(2021도13926 판결 및 2024도6945 판결 등)에서도 교사의 지도행위가 교육상 필요한 과정이었는지, 객관적으로 타당한 범위 내에 있었는지, 행위의 경위와 목적, 교사와 학생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 제시됐다. 결국 교사의 행위를 판단할 때는 단순히 결과나 학생의 주관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교육적 맥락과 행위의 목적, 방법 및 정도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구체적인 맥락을 살펴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과 달리 학교 현장에서는 신고 초기 단계부터 교육적 맥락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채 사법 절차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바로 이 제도적 공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 의견제출 제도를 넘어 ‘사전 전문 판단’으로 정부는 수사 과정에서 교육감이 교원의 교육활동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 교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기본적으로 신고와 수사가 시작된 이후 교원을 사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신고 이후의 보호’에서 ‘신고 단계에서의 전문적 판단’으로 제도적 틀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아동학대 의혹이 제기됐을 때 학교장 혼자 책임과 신고 여부를 떠안도록 하기보다 교육청이 법률·아동복지·교육·상담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가칭 ‘교육청 아동학대 사안판단위원회’를 운영해 사안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민원 및 의혹 제기 → 학교 차원의 기초 사실관계 확인 → 교육청 전문위원회의 검토·판단 → 정당한 교육활동은 교육적 중재 및 보호 / 학대 의심 사안은 즉시 신고 결과적으로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판단되는 사안은 교육적 중재를 통해 해결하고,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중대한 사안은 지체 없이 수사기관에 신고해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것이다. 핵심은 신고를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판단하는 옥석 가리기’다. ‘정서적 학대’와 ‘교육적 불편함’을 구별해야 한다. 향후 가장 세밀하게 다듬어야 할 부분은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행위의 판단 기준이다. 학생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거나 인격을 훼손하고, 의도적으로 심각한 공포와 불안을 유발하는 행위는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수업 방해를 제지하거나 규칙 준수를 요구하고,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것까지 정서적 학대의 틀에 가둔다면 교육은 성립하기 어렵다. 교육은 때로 학생에게 “그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적과 지도조차 학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는 교사의 교육적 권위와 공교육의 기능이 모두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동의 정서적 보호’와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조화시킬 수 있는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교실을 다시 ‘교육의 공간’으로 아동학대 신고의무제는 폐지되어야 할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아동학대의 사각지대를 없애면서도 교실이라는 교육 공간의 특수성을 반영해 더욱 정교하게 개선해야 할 제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명확하다. ‘학교장의 방어적 신고’에서 ‘교육청 중심의 전문적 판단’으로, ‘신고 이후의 사후 보호’에서 ‘신고 단계부터의 전문적 검토’로, ‘교육과 사법의 충돌’에서 ‘교육과 법의 조화’로 나아가야 한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교사를 침묵시키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교사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소신 있게 가르칠 수 있을 때 아동 역시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다. 교실은 법정이 아니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무분별한 교실의 사법화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수사기관의 행정력 낭비 역시 줄일 수 있다. 하루빨리 교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성장시키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교육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김형태 학교 안전정책포럼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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