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최흥길] 탄핵심판을 지켜보며
  • 입력날짜 2017-03-28 13: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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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총체적으로 혼란스럽고 사회 분위기가 착잡하다. 이것이 요즘 국민의 심정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가 현직대통령을 파면했다. 온 국민이 헌재의 심판과정을 숨죽이며 생생히 지켜보았다.

우리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우리 현대사만 보아도 권력의 주변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비리가 발생했다. 불행히도, 권력자들과 그 주변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받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는 권력 비리의 성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의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이 맡긴 국정의 고삐를 개인인 최순실에게 오롯이 넘겨주고 스스로 그 수족으로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4년간의 재임기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일장춘몽이었고, 국민에게는 정치철학도 없는 통치자로 비쳤다. 재임 초기 일부 언론이 지적했듯,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옛날부터 아는 사람만을 중용하고, 상식이 부족하고, 고집이 세어,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을 고수했다.

그리고 과거 젊은 시절부터 권위주의가 몸에 밴, 동시에 직무능력에도 의문이 있는, 고령의 인사들에게 중책을 맡겼다. 그들의 지체된 현실감각이 국가정책의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명약관화하다. 또한, 현실정치에 있어 청와대와 여당의 수직적인 관계를 강화해갔다. 자연히 여당 국회의원들도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일이 없었고, 협상 재량 없이 4대 개혁입법(노동·공공·금융·교육개혁)을 요구하여 대화와 타협에 기초한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정치가 계속되는데도 언론감시, 여당의 견제, 정치권의 견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국가의 권력간 견제장치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다. 참 수치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의 파면은 국가의 수치이다. 이번 사태로 국격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정치·경제·사회의 각 영역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국가 위상을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외교·안보·경제의 영향을 분석하고 대비해 나가야 한다.

정치권은 미래를 위한 국민의 변화를 생각해 정치구조의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통치구조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혼합형이다. 대통령 아래 부통령을 두는 대신 내각제적 요소인 국무총리가 있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

그런데 해방 이래로 책임총리를 본 적이 없다. 총리는 헌법에 규정된 권한 행사를 하지 못하고, 그저 대통령 또는 정부의 정책과실에 대한 국민 여론 악화를 무마하기 위한 ‘매 맞는 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의 자의적인 권한남용을 견제하고 공직사회의 병폐를 개선해야 올바른 정책입안이 되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헌법개정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번 대선이 되었든 다음 지방선거가 되었든 통치구조에 대한 개선 규정을 헌법에 담았으면 한다.

지난 3개월간 1,600만명의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누굴 위해서 추운 겨울 그 많은 국민이 길거리에 모여 대통령탄핵을 목놓아 소리쳤는가.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장에 참석하여 시민들의 열망을 볼 수 있었고, “이게 나라냐”는 팻말을 보면서, 가슴이 메는 고통도 느꼈고 서글프기까지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력이 성장하기까지 국민은 그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 대학생, 노동단체, 사회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는가. 이렇게 일궈낸 국가를 더는 망치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어제, 오늘, 내일을 위해서 국민 각자 주권자로서의 자신을 한번쯤 돌아볼 때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 주권자로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의견을 정치권에 요구해야 한다. 내일의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말이다.

최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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