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A여고 등 성적 유출 의혹, 어떻게 봐야 하나?(2)
  • 입력날짜 2018-10-09 19: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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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평등, 공정, 정의로운 사회’ 강조하는데...
김형태 전 서울시교육위원
김형태 전 서울시교육위원
교무부장이 자신의 두 딸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 전교 1등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으로 교육청 감사를 받은 서울 강남 A여고 논란에 대해 결국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앞서 광주의 한 고교에서 일어난 고3 내신 시험문제 유출사건 수사는 검찰로 넘어갔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행정실장 박 모 씨와 학부모 신 모씨 2명을 기소 의견으로 광주지검에 송치했다. 그리고 해당학생은 자퇴 처리됐다고 한다. 그리고 강원도의 한 고교에서도 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잊을 만하면 터지는 시험지 유출 사건은 ‘성적 지상주의와 사학의 폐쇄적인 학교운영 구조가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험지 유출이나 성적조작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꿩 잡는 게 매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 중심 사고와 ‘성적만 좋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성적 지상주의’를 꼽을 수 있다. 이른바 ‘명문대 간판’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와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대학 간판으로 사람의 능력, 낙인찍는 인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수능 위주의 정시보다 내신 성적과 생활기록부 위주의 수시 강화가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무리 취지와 목적이 좋아도 과열되면서 악용사례가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예컨대, 수능을 강조하면 사교육비가 폭등하고 재수, 삼수하는 학생들이 늘고, 봉사활동을 도입하면 학부모가 학생 대신 봉사활동 하여 제출하는 일탈이 속출한다. 요즘은 수시 비중이 76%를 넘어 80%에 가까워지다 보니, 점점 내신 성적 등 학교생활이 중요해지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대학입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보니 시험문제 유출, 성적조작 등 일탈과 부작용이 늘고 있다.

안 그래도 말 많은 학생부종합전형과 내신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지고 있고,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우리 학생들이 지게 된다. 물론 대다수 학교는 내신 관리를 잘하고 있다. 문제 되는 학교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능만큼 철저한 ‘내신 관리 시스템’ 마련해야 한다. 시험유출 및 조작 사건이 계속된다면 고교 내신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할 것이고, 현행 대입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험문제를 유출하는 등 성적 비리의 경우 파면과 형사처분 등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시험문제가 도난, 유출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인쇄실을 비롯해 시험지를 관리하는 교무실 등에 보안, 잠금장치를 강화하고, CCTV를 설치하는 등 시스템적인 보완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신 줄 세우기’를 강조하는 현행 입시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내신 절대평가를 도입하여 치열한 내신 경쟁 부담을 줄이고, 과목별 가중치를 부여하거나, 면접고사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해 대학에서 우려하는 변별력 문제도 해소하자”는 교육전문가들의 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 대학진학률 낮추고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속히 제정해야

더 나아가 독일 등 교육선진국들처럼 대학 가지 않아도 임금이나 승진에서 거의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열어가야 한다. 고등학교만 나와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굳이 대학 가려는 학생들이 상당수 줄어들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이 절실하다.

일부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를 ‘팔꿈치 사회’라고 표현한다.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불공정한 경쟁 사회’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을 속히 제정해야 할 것이다.

“열여섯 살 아이 앞에 '넘사벽'(높은 장벽)으로 존재하는 소수의 아이가 있고, 언제나 그 아이들이 최상위권을 독점하고 결국 그 아이들만이 이름 있는 대학교에 가서 잘 나가는 일자리를 얻게 될 거라는 현실을 눈치를 챈 것일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패배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는 건 비단 우리 아이들만은 아닐 것입니다.

대학 간판으로 사람의 능력을 차별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요. 당장 내 아이는 오늘까지와는 전혀 다른 하루를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는 주입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불평하던 세계사 선생님에게 불만을 거둘 것입니다. 영어교과서 본문을 전치사 하나, 관사 하나 틀리지 않도록 암기하는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 과목과 관련된 디자인 동아리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내신 시험 때문에 신경이 과민해진 탓에 배가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는 삶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살 것 같습니다.”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을 호소하는 한 학부모의 절절한 하소연이다.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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