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칼럼] 대체 누구를 위한 <도제학교 정책>인가?
  • 입력날짜 2019-06-24 16: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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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도제학교,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1)
김형태 교육을 바꾸는 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김형태 교육을 바꾸는 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도제(徒弟)’란 특별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장인으로부터 받는 직업교육이다. 다시 말해, ‘도제교육’은 중세 유럽 길드(guild/상인과 수공업자의 동업조합)에서 장인의 가르침에 따라 후계자를 양성하던 제도로, 단순히 기능과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전인적(全人的) 직업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비교적 도제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독일과 스위스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1월 스위스 베른의 상공업직업학교를 방문한 뒤, ‘학교 중심의 우리나라 직업교육과 스위스식 산업현장 중심 도제식 직업교육의 강점을 접목한 새로운 직업교육 모델을 창출하겠다’며 충분한 준비나 법적 근거 없이 갑작스럽게 도입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독일과 스위스의 도제식 교육 훈련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도입한다면서, 특성화고 1학년 학생 중 희망자를 선발해 2학년부터 학생이 기업과 학교를 오가며 교육 훈련을 받는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법적 근거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한 졸속정책

누가 봐도 교육 논리를 외면하고 정치 논리에 입각한 졸속정책, 전시행정이었지만, 도제학교가 청와대의 관심 사업(2016년 박 대통령 도제학교 운영 중인 인천기계공업고 방문)이자, 박근혜 정부의 ‘6대 교육 개혁과제’에 포함되면서 특성화고 9개교로 시작한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늘어, 2016년에는 60개 특성화고로 확대되었고, 2017년에는 전국적으로 198개 특성화고가 도제학교 사업에 참여했다. 또한, 올해 3월 기준 참여자는 도입 5년 만에 8만 명을 넘어섰으며, 참여 기업도 2014년 1897곳에서 올해 3월 기준 1만4000곳으로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밥을 너무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우수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통한 고용률 확대를 목표로 도입된 도제학교가 과연 그 취지와 목표대로 실현되고 있을까? 먼저 2016년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시 도제학교 10곳, 16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실습교육 내용과 기업체의 교육 훈련의 연관성이 없다는 응답이 43.8%(70명)였다. 학생들은 기업에서 전공 관련 업무가 아닌 청소, 잡일 등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하다 다칠 수도 있겠다’는 응답이 65.8%나 됐지만, 안전장비로는 목장갑, 작업복 등 단순 작업 도구만을 지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자신이 산업재해를 당했거나 함께 일한 친구가 산재를 겪은 경우도 10%에 달했다. 한 마디로 안전교육 및 안전관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후 교육 시민단체 및 몇몇 언론에서 도제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특히 촛불 정부라 불리는 문재인 정부 들어와 적폐 및 구태 청산,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도제교육이 원점에서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산업체 파견 학생들, 주로 청소와 허드렛일(43.9%)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4월 전남교육청의 실태조사(전남지역 16개 학교에서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644명 중 428명(75%)을 대상)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이 도제 기업에서 주로 하는 일은 청소 20.4%, 허드렛일 12.1%, 기타(페인트칠, 크레인 조정, 본드 칠하기 등) 43.9%였다고 한다. 38.3%는 ‘학교 수업과 기업 업무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응답했고, 도제교육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53.2%는 ‘도제 반을 다시 선택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또한, 65.2%가 ‘일하다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응답했고, ‘실제 일하다 다친’ 학생이 33.7%나 됐다. 그러나 산재보상을 받은 경우는 산업재해 피해 학생 중 25.5%에 불과했다고 한다.

실태 및 현실이 이렇게 심각하다 보니, 교육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도제학교에 대한 전수조사와 현장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남교육청 실태조사 TF도 ‘학생 실태조사 결과 도제학교 참여 분야와 주로 하는 일의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어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아울러 ‘도제학교 참여 기업의 노동 안전 실태점검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교사 75%는 ‘기업체 주도의 도제반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고, ‘도제반 운영에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토로한 교사도 43.8%에 달했다고 한다.

제학교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학생을 위한 도제학교로 거듭나야!

특히, 2017년 제주도 음료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깔려 사망한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 씨도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일학습 병행 도제 제도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힌다”면서 “왜 특성화고를 도제학교로 지정해 학생들을 노동자로 만들어야 합니까? 일 학습병행 도제학교 제도를 없애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제학교 확대와 법제화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는 관련 내용을 담은 ‘산업현장 일 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2016년 6월에 발의했고, 이듬해 9월에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은 올해 3월 환경노동위원장 수정안으로 병합처리 돼 상임위 문턱을 넘었고,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일 학습 근로 기간이 끝난 학습근로자가 일정 수준의 평가에 합격할 경우 국가 자격을 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그동안 전교조 등 교육단체에서는 법적 근거도 없이 도제학교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산업체로 파견하고 있다며 비판해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제학교 정책은 박근혜 정부에서 아무런 법적인 근거 없이 밀어붙인 졸속정책이고, 정치 논리에 근거한 전시행정이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거꾸로 이 정책의 무리한 시행으로 강원도의 한 공고 도제 업무 담당 선생님이 학생을 받아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는 분명 달라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교문 현답 (교육문제, 현장에 답이 있다)을 실천하는 차원에서라도 도제교육을 전반적으로 원점에서 재점검,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선 문제점이 무엇인가 깊이 있게 살펴보고, 바람직한 개선안을 내놓는 데 주력해야 한다.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혁신하고, 장점은 십분 살려 나가는 교육정책과 교육행정을 펼칠 때, 학생 등 교육 주체와 학교 현장은 크게 환호하며 박수를 보낼 것이다.

김형태-칼럼 교육을 바꾸는 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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