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지정 평가를 거부하던 자사고, 왜 갑자기 백기를 들었을까?
  • 입력날짜 2019-04-09 08: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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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관련 칼럼 1]이제는 수직적 서열화에서 수평적 다양화로 나아가야!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서울시교육청과 자사고 간 갈등이 지난 5일 분수령을 맞았다.

자사고 학부모들의 대규모 집회와 함께, ▲평가를 빙자한 '자사고 죽이기' 중단 ▲평가지표 재설정 ▲평가위원과 평가과정 전면 공개 등을 요구하며, 재지정평가를 위한 운영성과평가 보고서 제출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자사고들이 갑자기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약 열흘 만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운영평가를 받는 경희·동성·배재·세화·숭문·신일·중동·중앙·한가람·하나·한대부고·이대부고·이화여고 등 13개 자사고 모두 제출기한인 이날 오후 5시 전에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가 결과 실제로 재지정을 취소하는 결정이 나올 경우 행정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이라 교육청과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서울 자사고 교장연합회는 “학생·학부모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속내는 평가를 끝까지 거부할 경우 탈락 이후, 소송에서 불리할 것 같아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등 관련 법령에 따라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법령상 의무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놓고 서울시교육청과 자사고 간 갈등은 진보성향 교육 시민단체들과 교원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시민사회와 정치권으로 확산 일로에 있었다.

다시 말해, 지난 3일 서울시의회가 “자사고 재지정 평가 거부 때 즉각 취소 절차 밟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지난 4일에는 전교조 서울지부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22개 서울지역 교육단체가 소속된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사고의 재지정 평가 거부 철회를 촉구했다. 서교협은 “재지정 평가 거부는 ‘그동안 누렸던 특권을 계속 보장해달라’는 생떼”라며 “평가 거부 핵심 논리로 재지정 기준 점수 상향을 꼽고 있는데 이는 교육부가 이미 2014년 정한 것이며,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평가지표 역시 사전에 공지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생 자체가 비교육적인 자사고, 이제는 정상으로 되돌려야
교육청의 정당한 평가를 거부하는 자사고들을 보면서 개학을 연기했던 한유총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교육계 3대 압력단체는 ‘사학연합회, 사립유치원연합회, 학원연합회’이다.

이들 소수 이익집단 앞에만 서면 교육감, 국회의원, 대통령 등 선출직들이 작아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촛불정부와 진보교육감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들의 집요한 로비와 막가파식 호통은 예전 같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치원3법 파동에서 보았듯이.

자사고는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학교였다. 교육 논리와 교육적인 안목으로 도입 여부를 판단했어야 함에도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학교였기 때문이다. ‘규제’에도 착한 규제가 있고 악한 규제가 있는 것처럼, ‘다양화’에도 좋은 다양화가 있고 나쁜 다양화가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정책’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결국 수평적 다양화가 아닌 수직적 다양화, 다시 말해 고교 서열화를 심화, 촉진했다.
. 그것도 정치 논리에 밀려 무분별하게 확대했다. 지방에서 자사고에 대한 호응이 적자 서울지역에 집중적으로 27개나 지정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미달사태와 학사 파행을 예고했다.

또한, 교육은 엄연히 국가의 기본 책무이다. 북유럽의 교육선진국들처럼 공공성을 강화해도 부족한 마당에 경제 논리, 시장 논리에 밀려 교육을 사립(개인)에 떠넘기는 몰지각함과 퇴행과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것은 마치 공공재 성격인 지하철을 민자 사업하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우선 당장은 돈이 적게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9호선 지하철 조사특위’ 통해 뼈아프게 체득했다. 교육 당국이 가급적 간섭하지 않을 테니 사학의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등록금 3배를 받아 학교를 한번 운영해 보라는 것은 교육을 장삿속으로 내모는 것으로 교육 포기에 가깝다. 이런 논리라면 경찰대나 사관학교도 현대나 삼성에 맡길 일이다. 경찰대나 사관학교를 민간회사에 맡겨, 학비를 3배까지 비싸게 받으면서 교육하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 국민 중 몇 명이나 동의할까?

자사고 정책은 “교육계의 4대강 사업”
“교육계의 4대강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사고 정책은 가뜩이나 기형적인 우리 교육계를 더욱 일그러진 괴물로 만들었고 급기야 우리 사회의 발달장애까지 초래하였다. ‘재정적 독립’, ‘건학이념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을 표방하는 등 설립 취지나 목적은 장밋빛 청사진처럼 그럴듯했으나, 결과적으로 자사고는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공장으로 전락했다.

다시 말해, 현재 대부분의 자사고는 철저하게 국∙영∙수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과정으로 획일화되었고, 서민층이 다니기 어려운 귀족학교, 특권학교로 변질하였다.

처음 자사고에 입학하는 학생이나, 보내는 학부모들의 기대는 자못 컸다. 등록금 3배를 냈으니 당연히 교육의 질이 3배 정도 좋아질 것이라 여겼는데, 학교 시설도 거의 예전 그대로, 선생님도 거의 그대로, 수업의 질도 거의 그대로. 눈에 띄게 달라지고 좋아진 게 없어 보였다.

겨우 위안 삼을 수 있었던 것이 비교적 중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자사고에 대한 기대치와 만족도가 떨어지자 미달하는 학교들이 속출했다. 결국 용문고와 동양고는 일반고로 전환하였다.

그러자 자사고들은 살아남기 위해 명문대 진학에 더욱 목을 맸다. 명문대에 몇 명 보냈느냐에 따라 학교의 명운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소위 일류대에 많이 보낸 학교는 신입생들이 몰렸고 진학률이 저조한 학교는 여전히 미달이었다. 자사고 안에서도 선호학교와 비선호 학교가 갈렸다.

그러자 더욱 학사 파행, 회계부정, 전편입학 부정, 교육과정 부당운영까지 감행하면서 오로지 진학률에만 매달리는 사이 자사고는 입시학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사이 일반고는 이류, 삼류 학교 취급당하며 점점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자사고 운영 몇 년 만에 교육생태계는 끔찍하게 망가졌다. 특목고-자사고-특성화고-일반고로 고등학교 유형별 서열화가 점점 뚜렷해지면서 다양한 교육은 고사하고, 일찌감치 배움을 체념하고 무기력해져 가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사고 등 특목고가 성적 우수학생을 독점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가며 입시교육에 열을 올릴 때, 성적이 부진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집 가까운 자사고에서 밀려나 먼 곳으로 통학하거나, 학급당 학생 수 40명에 육박하는 찜통 교실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이러한 교육차별은 고스란히 교육 양극화, 사회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의 일반고 진학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입학생 중 강남3구 출신 집중 현상은 이제 더는 뉴스거리도 못 된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일반고가 위기라고 말한다. 일반고가 이렇게 슬럼화된 원인이 일반고에 경쟁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서열화되고, 그 서열에 따라 분리되는 비교적인 교육을 받아 왔다. 따라서 학생들 자신을 실패자, 열패자로 인식하고 있다. 일반고는 이런 실패감, 열패감이 상대적으로 큰 학생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성적에서든 생활면에서든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교육이 없는 교육부 시절”을 혹독하게 경험했다. 단팥 없는 찐빵처럼, 이명박 정부의 5년과 문용린 교육감의 1년 반,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4년은 교육적인 논리와 교육적인 안목 대신, 정치 논리, 시장 논리, 진영논리, 경쟁 논리만 무성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이라면, 학교 다양화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황폐화한 것이다. 다양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서열화하고 분리하는 수직적인 다양화는 분명 교육적이지 않다. 공부 잘하는 아이 따로 떼어 과학고, 외고, 자사고, 국제고 등 특목고 만들고, 장애아이 따로 떼서 특수학교 만드는 것은 교육 논리가 아니다.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전 영등포시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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