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은 MB정부 때 가장 “쿨한 게” 아니라 가장 “굴했다!”
  • 입력날짜 2019-10-21 1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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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 이번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나는 MB정부 때 정말 어이없이 해직돼, 누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한동안 분신을 생각할 정도로 이른바 ‘개고생’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명박 정부 때 쿨했다”는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TV를 통해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잠시 어안이 벙벙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윤 총장의 이 발언은 거의 모든 언론에서 “MB 때가 가장 쿨했다”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됐다. 물론 윤 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MB정부가 가장 중립적이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MB정부부터 순차적으로 말하면서, 현 정부에서는 과거와 달리 법무부 보고도 하지 않고 있고, 청와대에서 구체적 사건처리에 대해 일체 지시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려 했지만 다른 질문이 이어지며 답변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MB정부 시절 부당한 검찰 수사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다”는 표현은 마치 ‘이명박 정부 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가장 잘 보장됐다’는 소리로 들려 충격과 함께 깊은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쿨하다[cool--]’는 ‘꾸물거리거나 답답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시원하다’라는 뜻이다. 과연 MB정부 시절 검찰이 이랬을까? 오히려 반대가 아니었을까? 윤 총장은 검찰을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MB 때가 가장 굴했다”라고 했어야지 않을까? ‘굴하다[屈--]’는 ‘맞서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나 주장을 누그러뜨리거나 철회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이 어미늑대 잡는 방법으로 노 전 대통령 잡은 MB정부 때 검찰
많은 사람이 이명박 정부 시절을 ‘검찰 전성시대를 열었던 가장 추악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실제로 정연주 KBS 사장과 PD수첩 수사, 용산참사와 민간인 불법사찰, 그리고 고 장자연 씨 사건 등 MB 정부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제1기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검찰의 과오로 꼽은 17건의 사건 중 7건으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았다.

당시 검찰이 기소했다가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무지막지한 권력에 참혹하게 인격살해를 당했다"고 토로했고, 한학수 피디는 “윤 총장이 쿨하다던 시기에, 피디들과 작가들은 체포되고 수갑을 차야 했다”며 “당신의 쿨함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검찰의 문제점은 가장 큰 문제점은 ‘영혼 없는 이중 잣대’다. 즉 막강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손에 틀어쥐고 철저하게 권력·금력 편에 붙어 기생했다. 즉 전관예우, 유전무죄 원칙에 따라 살아있는 권력과 재벌 등 있는 자들에게는 면죄부, 또는 솜방망이 수사와 기소로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고,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과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먼지털기식 수사, 별건 수사, 피의사실 공표로 망신주기 수사 등을 통해 치가 떨릴 정도로 잔인하게 수사하거나 아예 개돼지 취급하여 거의 투명인간 취급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게 아니라 만 명에만 평등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을까?

MB정부 시절 검찰을 떠올리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검찰은 2009년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주변 사람들에 대해 먼지털기식 수사에 나섰고, 피의사실 공표와 논두렁시계로 대표되는 언론 보도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을 망신주고, 압박해 끝내 벼랑 끝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 대통령 인기가 오르자, 자기 주머니에는 바윗덩어리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현미경을 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바지 속에 있는 먼지를 찾기 시작했다. 뒤지고 또 뒤지자, 드디어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측근들을 잡아들이고, 가족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연일 언론과 손잡고 노 전 대통령을 부도덕한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다. 국민도 덩달아 분노와 배신감을 드러내며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변명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빠지자, 당초 법에 따른 투쟁을 하겠다던 생각을 접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진 것으로 보인다. 구차하게 살 것인가? 깨끗하게 죽을 것인가? 고심하고 또 고심한 끝에...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면 어미 늑대의 선택이 떠오른다. 유목민들이 어미 늑대를 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참 치졸하고 잔인하다. 어미 늑대의 모성애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기에. 먼저 늑대 굴에서 새끼늑대를 잡아 와 집 근처에 묶어둔다. 새끼늑대가 신음을 내도록 성기 부분을 끈으로 동여매 오줌을 누지 못하게 한다. 끙끙거리며 울부짖는 새끼늑대... 어미 늑대는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잡힐 것을,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차마 새끼늑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새끼늑대에게 다가간다. 그러다 그만 사람들이 만든 덫에 걸려 꼼짝없이 죽고 마는 것이다.

노 대통령도 어미 늑대처럼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그들을 핍박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검찰 수사는 ‘엿장수 맘대로?’ MB정부 때 편파적 수사 극에 달해
10년 전 나는 대표적인 비리 사학인 서울 양천고의 급식·시설 비리 등 사학비리를, 힘없는 학생들을 대신하여 교육청에 공익감사 요청했다가,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공익제보한 사안에 대해 2008년 5월 서울시교육청이 감사했다. 그러나 당시 비리사학과 한통속이었던 교육청(공정택 교육감)은 사소한 것 몇 가지만 지적하고 정작 급식 비리 등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었다. 이에 불복해 전교조 서울지부가 양천고 사학비리를 검찰에 고발했다. 교육청과 경찰은 못 믿어도 그래도 검찰인데 ‘최소한의 정의실현을 하리라’는 믿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믿는 도끼가 발등 찍는다 했는가? 결과적으로 검찰은 한술 더 떴다. 서울남부지검은 이 사건을 양천경찰서 경제팀 통해 겨우 고발인 1회 조사하고 서둘러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어떻게 수사다운 수사 한번 안 하고 비리 사학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검찰관계자는 “MB 정부에서 어떻게 전교조가 고발한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고발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수사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는 검찰의 부끄러운 민낯을 극명하게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멀쩡한 학교를 문제 삼은 셈이 되어, 2009년 3월 9일, 어이없이 해직됐다. 내 부당한 파면에는 3자의 잘못이 있었다. 첫째는 교육기관답게 학교를 운영하지 못한 상록학원 양천고, 둘째는 사학비리를 지도⦁감독하기는커녕 한통속이었던 서울시교육청, 그리고 제대로 된 수사 한번 하지 않고 확인 사살한 남부지검이었다.

사학비리는 학생들의 꿈을 훔치는 중대한 도둑질이다. 이에 교육자적 양심으로 도둑을 신고했더니, 도둑을 잡기는커녕 신고자를 파면하도록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한 검찰. 2009년 3월 10일부터 나는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또한 양천고 사학비리 수사 촉구를 위해 1인시위에 돌입했다. 학교 앞에서, 교육청 앞에서, 검찰청 앞에서. 1년 넘게 계속되는 1인시위에 언론에서 관심을 두어 120회 정도 크고 작은 보도를 했다. 전교조가 고발해 수사할 수 없다고 하여, 양천고 졸업생, 학부모, 그리고 시민단체가 연합해 다시 고발했지만, 여전히 수사하지 않고 있었다.

- 지면 관계상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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