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역사는 승자를 중심으로 기록합니다”
  • 입력날짜 2016-04-04 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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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가계부채 1200조 원 시대를 지내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벌써 19년 차가 되었네요. 그 사태 이후로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제일인데도 그동안 대책이 유비무환이라 계속 기록을 경신하고 있지요.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는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우신가요?

왜 그럴까요.
단지 소득분배가 불평등해서요?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 봉건제 사회에서 태어나 자본주의 초기를 정말 힘들게 사신 분들이지요.

조선의 봉건제에서 그리고 일제의 반봉건에서 정말 힘들게 사셨죠.
그런데 해방 후 이 나라엔 정말 큰 복이라 할 경제발전이 있었지요.

조선 시대 일제 해방 후 하루 두 끼도 못 먹던 서민들이 비록 옥수수죽에 밀수제비라도 마음을 까부수는 배고픔의 괴로움을 꺼주는 점심을 먹으면서 느끼던 행복감은 정말 헤아릴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왜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살률이 부동의 세계 1위인가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발생한 사태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아온 방식이 편법이었나요? 불법이었나요?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싸고 젊은 평론가들이 불편한 마음을 드러낼 때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일념을 그렇게 가볍게 우익적 마인드라고 재단하는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배고픔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냥 아이들이었지요.

역사는 승자를 중심으로 기록합니다. 패자가 명분이 없는, 아니 명분일 수 없는 전쟁을 일으켰을 때는 패자는 영원한 악이 됩니다. 그것이 지금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수안정희구를 고착화하는 원인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동안 모아왔던 재산을 어디에다 버렸는지 아시나요?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1997년을 경계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위기를 주범인 재벌에게 물어 경제를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재벌들은 정경유착을 통해 책임을 중소자본가 중소상인 노동자 농민에게 넘기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 전가 방식이 바로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에서 비롯된 <빚 권하는 사회> 정책이었지요.

카드빚과 고리대 대부업이 부르는 참극은 가느다란 소나무가지에 매달려서라도 죽어야 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이었지요.

자녀들이 잠시의 난국을 피하려고 빌린 돈 때문에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재산이 금융기관의 추심과 경매로 인해 빼앗기고 절망의 죽음이 잇따랐지요.

그런데 이분들을 구제하고자 한 노력은 진보들의 세력다툼으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민노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150회에 걸친 나 홀로 파산학교를 여는 것을 본 보수적인 법원 판사들이 스스로 파산학교를 개최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민노당이 분열되자 급속이 법원은 보수화되었지요. 한 푼도 없는 채무자들에게 매달 일정한 금액을 갚는 개인회생을 강요하고 파산관재인 비용까지 물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아직도 빚을 피해 갈 수 있는 공적 파산제도는 후퇴하고 법적으로 시효가 끝난 부채를 국가가 설계하고 일부 운영에 참여하는 기관에 의해 추심이 계속되고 있는 사회를 두고 생활지원만 하면 될까요?

대추나무 연 걸리듯이 매달린 채무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든데 생활지원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절망에 한 번 빠진 사람은 끝없이 절망을 즐기게 된다는 걸 정치인들은 모르지요.

왜냐면 대한민국에서 정치하는 분들은 절망을 겪어본 적이 없는 엘리트 출신들이기 때문이지요.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그동안 당의 서민 정치활동에서 유일한 성과를 내었던 을지로위원회 활동가들을 모조리 비례대표에서 낙방시켰던 것에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수는 극우라고 아무리 비난해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명언의 도움을 얻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선근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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