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칼럼]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다. ‘국정 역사교과서’ 이제라도 중단해야!
  • 입력날짜 2017-01-25 13: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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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밀어붙이기에, 국회 ‘국정역사교과서 금지법’ 처리
김형태 교육정책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 제8대 교육의원
김형태 교육정책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 제8대 교육의원
파시스트 국가나 공산독재 국가에서는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 차원에서 정부·여당이 앞장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나라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마치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는 것과 같은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문 이후 2년 만에 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카드를 내보였다. 이에 교육계와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야당과 많은 국민이 독립운동하듯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이런 반발 여론에도 귀를 막고 그동안 국정 역사교과서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국정교과서란 이른바 1종 교과서로, 교육부가 ‘저작권으로 만드는 교과서’이고, 검인정교과서는 ‘국가가 제정한 교과서 검정기준에 합격한 교과서’를 말한다. 1종 교과서인 국정교과서와 대조되는 용어가 검인정교과서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집필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교육부 장관의 검정 또는 인정을 받도록 교과서용 도서규정(대통령령 제8660호)에 명시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거친 8종의 국사교과서를 각 학교에서 자유롭게 채택해 쓰고 있는데, 정부·여당이 나서 이 제도를 바꿔 하나의 국정교과서로 통합하겠다고 하여 거센 반발과 국민적 분노에 직면했다.



교과서의 획일화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참여정부 때인 2007년부터 초중고 국사와 도덕, 국어 교과서를 다시 검인정 체제로 복귀했다. 이렇게 이미 검인정 체제로 바뀐 역사교과서를 다시 국정교과서로 되돌리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북한과 러시아, 베트남을 제외한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유럽처럼 국민이 인종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복잡하게 갈라지고 얽혀있는 나라들은 학생들에게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프랑스는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기까지 인구 구성이 아주 복잡한 나라이다. 따라서 모든 학생에게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이다.

프랑스에서는 역사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알아봤더니, 학교에 평균 10명 가까운 프랑스 역사 교사들이 우선 회의를 통해 다양한 성향의 교과서를 구매해, 교육방법을 토의한다. 그리고 각자 선택한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수업방식은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토론을 주로 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역사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다각적으로 배우게 되는 셈이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바칼로레아(대학입학 자격시험) 문제에도 정해진 모범답안이 없다고 한다. 학생 각자가 자기의 입장에서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된다고 한다. 역사 인식을 정부 차원에서 위에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민주적 교육방법인 것이다.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질서가 하나만 존재하는 비민주적인 사회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권력자의 편의에 따라 모든 학생과 모든 시민이 하나의 역사만 알고 하나의 질서에 복종해야 한다.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여 국정교과서를 쓰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미화하여 가르친 게 바로 과거의 국정교과서였다.

역사라는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을 달리는 학문인 만큼 다양성을 배격한 채 국가가 만든 교과서만 사용토록 하겠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사고를 주입하려는 의도밖에 볼 수 없고, 오늘날과 같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금지법’ 국회 통과로, 3월 도입 불투명해져

조지 오웰은 “현재를 통제하는 사람이 과거를 통제하고, 과거를 통제하는 사람이 미래를 통제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박근혜 정부는 정권 차원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노골화했다. 이에 국회가 마침내 제동을 하는 칼을 빼 들었다.

역사교과서에 한해서 국가가 저작권을 가진 국정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인, 일명 ‘국정 교과서 금지법’을 교육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따라서 당장 오는 3월부터 사용 예정이던 ‘국정 역사교과서’의 사용이 불투명해졌다.

다들 입만 열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할 교육정책이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휘둘린다는 것은 교육현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학생들이 있기에 교육부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교육부는 어린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국정교과서 시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참에 시행규칙만으로 검인정 체계를 국정교과서 체계로 간단히 바꿀 수 있는 현행 제도도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

국정교과서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누가 봐도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역주행이고, 이는 교과서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후퇴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분들은 지금까지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싸워왔다.

그분들은 피를 토하듯 말한다. “정부·여당이 국정교과서를 강행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독립운동사의 왜곡·폄하에 맞서 싸울 것이고, 그것이 선열들에게 죄를 짓지 않는 길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하고 헌재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이 엄중한 시기에도,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포기하지 않은 교육부 및 정부·여당은 이런 꾸짖음을 무겁게 받아드려 더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이제라고 중단해야 할 것이다.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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