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특권을 이용한 반칙은 이제 제발 그만!
  • 입력날짜 2016-11-22 09: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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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최순실 딸) 특혜에 분노·허탈 … 청소년들 “뭘 배우라는 건가?”
김형태 교육정책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 제8대 교육의원
김형태 교육정책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 제8대 교육의원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로 급락했다. 20~30대 지지율은 1%로 젊은 층의 분노는 가히 폭발적이다. 젊은 세대가 이렇게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최 씨의 딸 정유라의 영향이 크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치열한 입시경쟁과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 ‘고교 시절 부당한 출결 관리 및 이화여대 부정입학’, 그리고 ‘돈도 실력이다’라는 발언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자아내게 했다.

전북 원광고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사는 건가? 열심히 노력한 학생들은 꿈과 희망이 무참히 짓밟히고 찢기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토로했고, 원주의 북원여고 출입문에는 “우리는 ‘말(馬)’은 없지만 ‘말’할 권리는 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기득권층이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물려받을 민주주의를 더럽히지 말아 달라”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또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집회가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번져가고 있는 가운데, 대구에서 자유발언을 한 조성해 학생의 일침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녀는 “굉장히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평소 같았다면 역사책을 읽으며 다음 모의고사를 준비했을 것이지만 기가 막히고 처참한 현실을 보며 살아있는 역사책 속에 나오게 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후, "우리 청소년들은 이런 현실을 보며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도 들고 괴로울 뿐"이라며 국정농단 사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광주에서도 10대 청소년들이 “최순실 씨 딸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으로 드러난 불공정한 사회와 이를 묵인한 정권에 분노하며 이젠 행동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우리는 대학진학을 위해 친구들과 경쟁하며 온갖 노력을 다해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취업 걱정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정유라 사례와 같이 재력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고 배우고 있는가?”라고 강하게 반문했다.

서울 강북의 한 고교에서는 고3 교실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생들 간에 난데없는 주먹질이 오갔다고 한다. 서울 상위권 대학 수시모집에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지원한 학생에게 친구들이 '너도 부모 배경으로 운동해서 대학 가냐'고 농담을 했다가 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일부 특권층의 비뚤어진 교육열

한국 사회에서 성공(출세)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교 졸업장’이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고속도로-지름길이 생겼다. ‘사립초→특목고(자사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출세 특급열차’가 그것이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자기 자녀를 이 열차에 태우기 위해 모두 안간힘을 쓴다. 아니 야단법석을 떨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특급열차의 우등석에 올라타기만 하면 성공(출세)이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특급열차의 우등석은 한정돼 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힘 있는 부유층, 상류층의 차지가 되기에 십상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이용한 반칙’을 활용해 당당히 자녀들을 올려 태운다. 정문이 안 되면 옆문, 옆문이 안 되면 후문으로라도 기필코 집어넣고 만다. 자식의 출세를 장담하는 보증수표 앞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도덕성, 체면은 모두 휴짓조각이 되고 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것, 꿩 잡는 게 매라는 것을 뼛속 깊이 잘 알기에.

이들이 이렇게 명문 학교에 집착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학맥과 인맥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모 외고 출신들이 벌써 법조계를 좌지우지한다는 공공연한 비밀부터 시작해서 특정 인맥과 학맥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다 신조선시대(양반과 서민)를 넘어 신골품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불평등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의 상위계층이 전체 국민소득의 45%를 점하고 있고, 부동산이 소수 1%에 편중돼 있어 사회 양극화의 해소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른바 우리나라에서 1% 안에 든다는 억대 연봉자들은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 억대 연봉자는 “소득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그 세금으로 나라가 유지되는 셈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도둑 취급할 뿐 과연 한국사회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일견 일리 있는 말이다. 일부 부유층의 비도덕적 행태로 인해 모든 부유층이 다 그런 양 도매금으로 손가락질을 당하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일부 부유층들의 특권을 이용한 반칙이 도를 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면 꼭 억울하게 느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부자들처럼, 부유층들이 먼저 나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 귀감이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권을 이용한 반칙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팔꿈치 사회’ 사라지고, 존경받는 부자들이 많이 나와야

현재 우리나라 일부 부유층들이 벌이고 있는 특권과 반칙 중 하나가 ‘부와 명성’을 대물림해 주기 위해, 실력과 자격이 안 되는 자녀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최순실 씨처럼 온갖 편법과 탈법을 통해 옆문, 뒷문으로 이른바 ‘명문 학교’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 사회를 '팔꿈치 사회'라고 하는 것이다. 옆 사람을 팔꿈치로 쳐 넘어뜨리는 '불공정한 경쟁사회'라는 뜻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이 존재할 뿐 아니라, '특권을 이용한 반칙과 치졸한 꼼수'로 승자의 자리를 거머쥐는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풍자이다.

학부모들의 제보와 증언에 따르면, 이렇게 편입학하여 학교발전기금 등 학교에 이모저모로 크게 기여하는 부유층의 자녀에게는 학교 차원에서 ‘특별 관리’를 해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신 부풀리기와 성적조작’ 등을 통해 좋은 상급학교에 보내준다는 것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라톤 경기에서 일반 서민의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가고 있는데, 일부 부유층 자녀들은 중간에 새치기하거나 자가용을 타고 앞질러 가는 셈이다. 이는 정상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학습의욕을 잃게 하는 것이며 교육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파행과 일탈을 우리 교육 당국이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일부 부유층들의 빗나간 자식 사랑과 사실상 편입학 장사 등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일부 학교들의 잘못된 행태를 알면서도, 눈 감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부유층들의 비뚤어진 교육열과, 사립재단들의 장삿속 운영, 그리고 생선가게 고양이로 전락한 교육당국, 이 3박자가 빚어낸 우리 시대의 참으로 부끄러운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백진우 학생(서강대학교 2학년)은 “일부 특권층의 반칙을 통한 입학은 일반학생들에 대한 기만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각종 허위 지표와 성과 등을 통해 입학하려는 행태에 허탈하면서도 학벌에 집착하는 그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고, 최훈민 씨투소프트 대표(희망의 우리학교 전 대표)는 “정유라 특혜 사건은 헬조선이 사실임을 증명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라마로 청년세대들에게 절망을 줬다. 각본 최순실, 주연 박근혜의 막장드라마는 조기 종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특권층은 초등학교부터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말문을 연 뒤, “재벌총수 아들이 영훈국제중에 부정입학을 했고, 특권층의 자녀들이 하나고 부정입학 의혹에 연루되고, 최순실과 같은 비선 실세의 자녀가 다시 이화여대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졸업과 동시에 어린 나이에 청와대 행정관 등 고위공직자도 되고 기업체의 돈을 뜯어 재단을 만드는 삶의 방식은 이미 교육 정의가 심각하게 훼손된 우리의 심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한탄했다.

인천 석남중학교 고보선 교장은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반칙과 편법이 기본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운을 뗀 뒤, “정직하고 양심 있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성세대는 크게 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 학생들에게 편법이 아니라 기본과 원칙이 사회의 요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경쟁을 부추기며 1등, 2등 등수를 매기는데, 이제는 차가운 경쟁사회에서 따뜻한 협력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에서 '더불어 잘 사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계층이동이 자유롭고, 열려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희망적이고 좋은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존경받는 부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부유층을 '사회 지도층'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시비 걸지 않고 "그 말이 맞다"라며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속히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판이 제 역할을 똑바로 해야 한다. 부유층이 더는 특권을 이용해 반칙하지 않도록 휘슬을 제대로 불어줘야 한다.


김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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